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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17)그림에 관하여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2-02 16:44:12 ] 클릭: [ ]

―우룸치시 녀자사범 학술강연회에서 한 연설(한락연)

여러 선생님들, 여러 학생 동무들!

오늘 대선생이 나를 요청하여 학술강연을 하라고 했다. 학술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전에 그림을 학습하면서 얻은 경험을 간단히 말하기로 한다. 아래에 나는 세가지로 나누어 말하려 한다.

첫째는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고 둘째는 그림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며 셋째는 그림을 가르치는 방법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는 도처에 그림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작은 범위에서 보면 의, 식, 주, 행 등 면에서 모두 그림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입는 옷은 반드시 아름답고 알맞아야 하는데 옷을 만들려면 반드시 매우 아름답게 설계해야 하며 디자인은 반드시 그림으로 설계해야 한다. 료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양념과 불의 색갈을 조절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므로 역시 그림으로 설계해야 한다. 또 집에 살려면 설계도를 그려야 보기 좋고 견고한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지에는 도안설계가 있어야 하는데 공정사가 도안설계를 하는 데 그림을 떠날 수 있는가? 또 여러가지로 편리한 교통공구는 어느 하나가 도화설계를 하지 않는 게 있는가? 자동차를 놓고 말하면 올해는 1946년인데 과학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1947년 신식 자동차 도안을 모두 설계해 공장에 맡겨 제조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학교에서 수업에 사용되는 괘도와 문자로 표시할 수 없는 각종 교학도구들은 모두 그림으로 표시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구석구석에는 그림이 없어서는 안된다. 례를 들면 중국 항전기에 있어서의 전후방의 구국선전사업에서 도처에 많은 그림을 볼 수 있고 학교에서는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림이 이렇듯 넓게 퍼지고 인생에 필요한데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기, 더우기 사범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반드시 그림에 대해 똑똑히 알아야만이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여러분들도 내가 오늘 중복하여 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주의를 환기시켜 그림의 여러가지 문제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946년 4월 6일과 27일에 《신강일보》는 〈한락연선생 서양화 전람 계시〉를 게재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외국의 도시 사진 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외국의 도시나 농촌이나 막론하고 우리 여기와 비교하여보면 우리 여기가 매우 락후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외국에서는 집 한채를 짓거나 혹은 공정 하나를 시작하기전에 공정사가 과학적인 설계를 하는외 반드시 미술공정사의 설계를 거쳐야만 최고기관에 보내 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건축예술과 미관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고 있다. 즉 작은 도시와 농촌이라 할지라도 그 건축물은 모두 아주 실용적이고 미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건축물은 일반적으로 매우 락후하다. 우리가 이렇게 락후하다는 것을 안다면 두말할 것 없이 과학예술과 연구를 중시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 각국은 과학적인 생산방식을 적극 사용하여 사회를 발전시키고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 진보적인 과학기계가 나오기전에 그림으로 도안을 설계하며 생산된 물품은 더욱더 진보하게 된다. 신강의 남로를 들여다보면 일반 사람들은 모두 아주 좋다고 하겠지만 내가 보건대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은 호랑이 한마리를 그리거나 혹은 나무 한그루를 그리는 것처럼 자세히 보면 아주 기계적이여서 사람들의 미감을 끌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외국에서 용품 하나를 제조할 때도 모두 많은 화가들의 연구를 거친다. 또 례를 들면 중국 강서 경덕진의 도자기는 이전부터 아주 유명하였는바 산생 초기에는 외국보다 훨씬 강하였다. 그런데 지금 외국과 비교해보면 원료는 일반적으로 대체로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외국의 예술적 미관에 미치지 못한다. 또 례를 들어 중국의 북부, 중부, 남부 각지에서 제품을 판매하려면 반드시 예술가들을 청해 당지의 민정풍속을 연구하고 인민들의 지식수준과 생활수준을 관찰하고 연구해야 이런 제품을 가장 빨리 판매할 수 있게 된다.

그림은 선과 색채로 표현되나 향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미감을 불러일으키고 심미 능력을 배양하는 기능이 있다. 보통 학교에서 선생과 학생들은 모두 미술과목을 부과로 취급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학교의 수업시간표는 제멋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천백년래 각국의 교육가들이 연구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각국의 수업시간표는 모두 비슷하다. 학교의 미술 수업시간은 비록 적지만 시간의 다소에 따라 수업의 중요성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 미술과 기타 과목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우리는 전문적인 미술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을 늘이지 않는다. 사생들이 이 과목에 대해 주의를 돌리지 않거나 대처하는 리유는 역시 인식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들은 교육 주관부문에서 수업 과정을 엄격히 취급하여야 하며 기타 수업 과정과 동등하게 중시를 돌려야 한다. 동시에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도 똑똑하고 명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솔선수범할 뿐만 아니라 많은 청년들의 귀중한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림을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먼저 똑똑히 알아야 가르치는 문제를 말할 수 있다.

지금부터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하여 말하겠다. 나는 지난날 교수 과정에서 매우 고통스러웠다. 리유인즉 많은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이 과목에 주의를 돌리지 않고 어물어물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나는 할빈 중동철도에 갔는데 그 곳에는 귀족학교가 아주 많았다. 나는 그중의 최고 귀족 자제학교의 그림과목을 맡았다. 이 학교에서는 미술선생이 자주 바뀌였는데 모두 건성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우들은 교원이 어물어물 가르쳐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나는 이런 결함들을 극력 만회하려고 노력하였다. 시기가 적당히 성숙되였다고 생각될 때 나는 교장과 교무장을 만나 참관단을 조직하여 다른 학교의 미술, 체육, 음악 등 과목을 참관할 것을 요구하였다. 10여개 학교를 참관하고 나니 4~5개 학교는 이미 학교당국에 심각한 인상을 남겼다. 다른 학교들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잘 할 수 있는가? 학교에 돌아온 후 교장과 사무장은 “우리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는가?”고 물었다. 나는 방법이 있었다. 물론 일정한 조건이 있어야만 했다. 나는 먼저 학교측에 두가지 권리를 요구하였다. 하나는 미술 최고 점수를 70점으로 하고 최저 점수를 50점으로 하며 불합격자는 락제를 시킨다. 둘째는 학생의 규률은 내가 관리한다. 교무처는 마음대로 학생들의 휴가를 허가해서는 안된다. 학교 당국이 일일이 허락했다. 내가 이 두 권력을 장악한 후 많은 동료들은 리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며 만약 승낙하지 않으면 물러가겠다고 표시했다. 학교측은 의연히 나의 의견에 찬성하였는데 그것은 교장과 교무장이 이미 미술에 대해 상당한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본래 회화 성적이 매우 형편없는 학교였으나 나의 방법을 실시한 후 개변을 가져와 학생들은 회화에 깊은 흥취를 가지게 되였다. 후에 우리 학교에서는 그림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다른 학교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으며 분분히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학교측과 토론한 후 나는 세 학교의 그림 수업을 맡았다. 때문에 이런 과정은 절대 어물어물 넘겨서는 안된다. 학생 여러분, 앞으로 만약 학교에 가서 일하게 되면 자신감을 수립해야 한다. 교학에서의 여러가지 곤난은 다 해결책이 있으며 작은 일 때문에 큰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생명을 랑비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생들의 청춘을 그르치게 된다.

개괄하여 말하면 그림에 대하여 우선 자기의 지식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자신이 똑똑히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대시킬 수 있다.

그림을 가르치는 교수법을 말하면 일반적인 방법은 그림을 모사하는 방법 밖에 없다. 즉 선생이 흑판에 그림을 그리고 학생들이 그림을 모방하여 그리거나 혹은 선생님이 그림엽서를 발급하고 학생들이 그 그림을 모방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각자의 미감과 창조력을 쉽게 말살시킨다. 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각자의 미감과 창조력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례를 들면 소학생들은 자기의 마음에 따라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가 어린이의 심리로 관찰하면 흔히 이런 작품들이 미감이 풍부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밖에 많이 사생하여 그 상상력을 발전시키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실물을 많이 관찰하게 한다. 학생들에게 인도하고 계발을 주며 선, 륜곽, 빛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서로 머리에 남은 인상을 말하고 다시 서로 평의해야 한다. 자기비판 정신을 수립하고 대자연을 따라배우며 여러 사람들을 따라배워야 한다. 서로 배워야 기교를 개진할 수 있으며 더욱 많고 더욱 아름다운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1946년 5월 21일 《신강일보》)

/번역: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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