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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량재문, 리계동, 리근식, 리홍수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1-06 10:29:48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3군―좌급 군관

량재문(梁在文, 1909—1979):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 기찰처 부처장

리명철이라고도 부르며 1909년 7월 21일 조선 경상북도에서 태여나 흑룡강성으로 이주했다. 1932년 5월, 주하현(현재 상지시) 마이하동에서 공청단에 가입했으며 1933년 10월부터 주하유격대, 합동지대, 동북항일련군 제3군 결성에 참여했다. 1936년 10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하여 기관총수, 포수, 기찰처(稽査處) 부처장이 되였으며 후에는 국제교통원이 되여 쏘련에 가며 국경 정찰원 임무를 수행했다.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흑룡강에 돌아와 목단강군구에서 참모, 통역으로 사업했으며 땅크수리공장 공장장으로 사업했다. 1948년에 송강성 민정청 부과장이 되였고 1955년 흑룡강성 화천현 민정과 과장, 화천현위생과 과장이 되였으며 1979년 11월에 사망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리계동(李啓東, 1896—1934):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 경제부 부장

리우백(李友白)이란 별명을 갖고 있으며 1896년에 조선 평안북도의 한 농민 가정에서 태여나 1919년에 조선 3.1운동이 실패한 후 길림성 통화현으로 망명하였다. 망명한 조선인민족주의자들이 통화에서 신흥사관학교를 세우자 이 신흥사관학교에 들어갔고 학교의 파견으로 1921년에 운남강무학당 제17기 보병과에 입학하였다. 졸업한 후 광주 혁명 활동에 참가하였고 1926년에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7년에 동북으로 돌아왔고 1928년에 선후하여 료녕성 흥경현과 길림성 녕안현(현재 흑룡강성) 동경성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있으면서 청년회, 소년선봉대, 청년동맹 등 대중조직을 조직하고 청년동맹 주임으로 일하였으며 또 《청년보》의 편집 사업을 맡아하였다. 1931년에 아성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5.1국제로동절 시위를 주도하였다. 1932년에 일본군이 주하에 침입하여 일면파와 위하를 점령하자 중공북만림시성위원회의 파견을 받아 오길밀 일대에 들어가 대중을 발동하고 항일 활동을 조직하였다.

1932년 9월, 중공주하중심현위원회 위원이 되여 군사 사업을 책임졌다. 1933년 3월, 현당위의 파견으로 우퇀(于團)에 들어가 선전, 지도 사업을 하였다. 1933년 6월에 또 의용군 손조양부대에 파견되여가 조상지 등과 함께 통일전선 사업을 하다가 10월에 조상지 등과 함께 주하반일유격대를 설립하고 군수 공급 책임자가 되였다. 이 대오는 주하의 삼고류, 오길밀, 모아산 등지에서 일본제국주의와 완강한 투쟁을 벌리면서 삼고류, 석두하자위 등 둘레가 50~60리나 되는 지역에 주하항일유격근거지를 건설했다. 1933년 12월, 조상지와 함께 소분대를 인솔하여 빈현 7구의 대지주이며 보위단장인 류림상을 사로잡았고 권총 1자루, 보총 12자루, 말 13필을 빼앗았다. 1934년 6월 28일, 주하유격대가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개편되자 경제부 부장이 되여 합동지대의 군수물자 공급 사업을 책임졌다. 1934년 5월, 할빈특무기관에서 특무 주광아(周光亞)를 합동지대에 혼입시켰는데 1934년 7월 교가위자 주둔지에서 이 특무에게 살해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리근식(李根植, 1916—1934): 주하반일유격대 기병대대 대장

리근지(李根芝)라고도 불렀으며 조선에서 태여났다. 1932년에 흑룡강성 빈현에서 공청단 서기가 되였고 1933년에 손조양부대에 들어갔다. 같은 해 10월, 주하반일유격대 결성에 참여하고 소년대 대장 겸 유격대 공청단 서기가 되였다. 1934년 봄, 주하반일유격대 기병대대 대장이 되였다. 당해 6월에 빈현 삼차하(三岔河)전투에서 복부에 중상을 입고 로흑산에서 병세가 악화되여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리홍수(李洪秀, 1910—1939): 동북항일련군 제3군 제2사 조직부 과장

조선에서 태여나 흑룡강성 탕원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1931년에 탕원유격대 결성에 참여하고 1936년에 동북항일련군 제3군 모 련 지도원, 련장이 되였다. 1937년에 제3군 기찰처(稽査處) 방정(方正)지방처 처장이 되였다. 1938년에 동북항일련군 제3군 제2사 조직부 과장이 되였다. 1939년에 란지연(蘭志渊)이 변절할 때 30여명의 부대원들을 인솔하여 제2로군 총부로 돌아가다가 련화포(蓮花泡)밀영에서 있은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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