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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 《한락연을 추억하여》(8)고모부 한락연의 룡정에서 지낸 나날을 회억하며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0-19 14:36:53 ] 클릭: [ ]

▨ 최순희

1910년, 일본제국주의가 조선 정부를 강박하여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다. 망국노로 되려 하지 않은 조선인민들은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행렬에 나섰다. 특히 쏘련 10월사회주의혁명 승리의 영향하에 조선인민들의 반일독립투쟁은 더욱 거셌다. 1919년 조선에서는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조선독립을 쟁취하는 ‘3.1’ 운동이 폭발했다. 그 후 이 운동은 룡정에까지 파급됐는데 룡정에서는 ‘3.13’ 반일투쟁을 펼쳤다.

당시 조선족 열혈청년인 나의 고모부 한락연(당시 한광우 혹은 한윤화라고도 부름, 나의 막내고모인 최신애의 남편)도 반일투쟁에 앞장 서 나섰다.

듣기로는 당시 룡정에 있는 영국조계해관에서 사업하던 고모부 한락연은 적극적으로 ‘3.13’ 반일투쟁에 참가했다. 나의 고모부는 해관 세무사(영국인)의 자전거 한대를 빌려 흰천 몇필을 산 후 영국조계의 세무사 집에 가서 밤도와 대량의 태극기(당시 조선의 국기)를 그려 각 학교에 나누어주어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반일시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당시 룡정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홍중학교라는 소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족학생들한테 노예화 교육을 시키기 위해 특설한 학교로 일본인이 직접 교장을 맡은 중심학교이기도 했다. 시위행진을 하던 날, 학교 당국에서는 학교문을 닫아걸고 학생들이 반일시위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서가 격앙된 시위 군중들은 담장을 뛰여넘어서 학교에 들어가 학교내 고급학년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을 한명, 한명 담장 밖으로 안아넘겨 시위대오에 참가하도록 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교장은 낯색이 창백해지더니 “몇년간 공을 들여 교육하였는데 이처럼 많은 어린 호랑이들을 키워낼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라고 한탄했다.

약 2개월이 지나자 룡정을 들썽케 하는 큰 사건이 또 발생했다. 당시 룡정주재 일본령사관에서는 매일 아침, 관례대로 일장기를 향해 인사하는 의식을 가졌는데 하루는 그들이 인사하려던 때에 기대에 휘날리는 기가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로 바뀌여졌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눈이 휘둥그래지고 당황해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또 2개월이 지난 7, 8월 사이 일제 교통원을 비밀리에 습격하여 중요 정보를 빼앗는 한차례 사건이 발생했다. 그 때 일본 당국에서는 서로 교통원을 파견해 지정지점에서 편지를 교환했는데 조선의 회녕에서3명, 룡정에서 3명을 파견해 중조 국경과 60리 쯤 떨어진 ××지점에서 편지를 교환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당시 이 정보를 접한 반일 지하조직에서는 회녕의 3명 교통원으로 가장해 미리 접합 지점에 매복하여 한꺼번에 그들을 소멸함과 동시에 중요정보를 빼앗았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측의 한 인원이 부상을 입어 일본경찰에 체포되였다. 그의 이름은 림×× (혹은 임××)인데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는 당장에서 자신의 혀를 깨물었고 경찰들의 혹형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일본경찰들의 가혹한 고문을 받다 못해 결국 감옥에서 영용히 희생되였다.

반년 사이 련속 벌어진 반일투쟁사건들에 나의 고모부는 직접 참가, 혹은 계획에 참여했다. 반일투쟁이 점점 짙어지는 형세에 비춰 일본 당국에서는 대량의 경찰과 특무를 파견해 비밀조사 혹은 공개적 체포에 나섰다. 나의 고모부는 더는 룡정에 남을 수 없어 이듬해 음력설에 룡정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음력설 전야 해관의 휴가기를 빌어 그는 룡정에서 40리 떨어진 큰아버지집에 가서 설을 쇤다는 리유로 섣달 그믐날 아침 한족복장을 입고 손에는 설맞이 물건을 들고 혼자서 조용히 룡정을 떠났다.

(최순희 구술, 김룡욱 정리)

최순희(1909―1997년): 한락연의 처조카, 어릴 적부터 한락연과 이웃으로 있으면서 한락연과 그의 전처 최신애(최순희의 막내고모) 부부의 딸 한인숙을 돌보았다. 어린 최순희는 한락연이 고향에서 혁명활동에 종사하는 일부 정황을 어렴풋이 목격한 적 있다. 한인숙 일가가 중국을 떠난 후에도 최순희는 한인숙과 줄곧 련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번역: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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