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닫기

[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석동수, 손태춘, 오일남, 오중협, 원금산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0-14 15:02:50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2군―위급 군관

석동수(石東洙, ?—?): 동북항일련군 제2군 모 련 련장

1932년 7월, 길림성 훈춘현에서 유격대에 입대하였으며 193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같은 해 겨울 중공훈춘연구(烟區)위원회 선전부에서 사업했으며 1934년에 민생단원으로 지목, 체포되여 3년간 감독을 받았다. 1938년에 녕안에서 활동했으며 항일련군 제2군에서 련장을 지냈다. 1941년 9월 25일, 쏘련으로 건너간 후 여러 차례 파견을 받고 국내로 들어와 소부대활동에 참가하였다. 1955년 12월부터 1959년 1월까지 중공연변조선족자치주정법위원회 당조서기를 지냈으며 1961년 9월부터 1962년까지 정협연변조선족자치주 제3기 위원회 부주석을 지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손태춘(孫泰春, 1915—1942):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 제7퇀 패장

1915년 4월 20일,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여나 후에 길림성 화룡현으로 이주했으며 1931년에 혁명에 참가하였다. 1932년에 화룡유격대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 제7퇀에 편입되여 반장, 패장을 지냈다. 1941년에 쏘련으로 건너가 동북항일련군 교도려에 배속되였으며 1942년에 파견을 받아 소부대 활동에 참가하여 정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같은 해 6월 5일, 경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적들의 포위에 들어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오일남(吳日男, 1914—1942):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 소년련 련장

1914년 10월 29일, 조선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여났으며 그 후 길림성 연변으로 이주했다. 1931년 봄부터 혁명에 참가했으며 1932년 7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3사에서 기관총패 패장을 지냈으며 1937년에는 소년련 제1임 련장이 되였다. 1938년에 제7퇀으로 옮겨 길림, 통화, 녕안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42년 5월 2일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오중협(吳仲協, 1909—1935): 공청단훈춘현위원회 서기, 령남항일유격대대 소대장

오일파(吳一波)라고도 하며 조선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 세선리에서 태여나 1914년 2월 가족과 함께 길림성 왕청현 춘화향으로 이주하였다. 룡정은진중학교를 졸업하고 룡정동흥중학교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룡정시내 중학생들의 반일시위와 동맹휴학을 지도했다. 1930년경에 비밀혁명활동중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1년 봄에 중공동만특별위원회의 파견으로 훈춘현 대황구로 가서 공청단훈춘현위원회 서기가 되였다. 9.18사변 후 대황구와 연통립자에 항일유격근거지가 창설되자 공청단원들로 무어진 돌격대 대원이 되였다. 1932년 6월, 돌격대가 령남항일유격대대로 재편성되자 소대장이 되였다. 1933년 여름,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여 1935년 5월 금창에서 처형되였다. (자료 출처: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원금산(元今山, 1910—1936):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4사 제1퇀 제3련 련장

조선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태여났으며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길림성 연길현 남양촌으로 이주했다. 1928년에 춘흥보습중학반에 입학하였으며 재학중 진보단체인 ‘청년회’에 가입하여 혁명사상을 키웠다. 1930년초, 조선 광주학생운동을 지원하는 시위대회에 참가하였으며 5월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31년 가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남양촌공청단지부 선전책임을 맡았으며 남양촌 적위대 소대장이 되였다. 1932년 8월, 4인돌격소조원이 되여 연길륙군보안대대 병졸들의 손에서 총 4자루를 탈취하였으며 그 이튿날로 왕우구유격대를 찾아갔다. 1934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이 설립되자 독립사 제1퇀 제6련 련장이 되였다. 1935년 8월, 안도현 량병태역에서 291호 화물차를 습격하여 적 10여명을 소멸하고 400여필의 광목천과 쌀, 사탕, 담배 등 후근물자들을 로획하였다. 1936년 3월, 동북항일련군이 설립되자 제2군 제1사 제1퇀 제3련 련장이 되였다. 1936년 10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이 편성되면서 제1사가 제4사로 개편되자 계속 제1퇀 제3련 련장을 맡았다. 10월말, 림강과 몽강의 접경지대인 소탕하툰에서 적 ‘토벌대’와 조우하여 싸우다 전사했다. (자료 출처: 《조선족혁명렬사전》)

/박문봉

0

관련기사 :
 
연변부동산
21세기중국정보사이트-백두넷
한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