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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22]장백산아래 약수동골의 자연인으로 살아왔어요

편집/기자: [ 강동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5-19 15:06:07 ] 클릭: [ ]

—장백산아래 심산유곡, 약수동골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아가는 강선모,김룡순 부부의 이야기

강선모와 그의 안해 김룡순은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에서 장백산 주봉 방향으로 약 20키로메터 떨어진 약수동골에서 반세기가 거의 되는 세월을 살아왔다.

지난 5월 17일, 기자는 그들 부부를 찾았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의 취재를 받고 있는 강선모(오른쪽),김룡순부부.

“장백산아래 심산유곡, 약수동골에서 오래동안 자연인으로 살아오면서 말그대로 산사람이 다 되였습니다. 참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요…”

강선모, 김룡 부부는 이렇게 첫마디를 떼였다.

료양원을 집으로

강선모씨는 1951년생으로서 올해 70세이고 그의 안해 김룡씨는 올해 67세로서 결혼해서 약수동골에 정착하여서부터 지금까지 장장 45년이라는 세월을 이곳에서 살아왔다.

장백산아래 청정지역인 약수동골은 삼면이 병풍같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강바닥의 모래알까지 알알이 들여다 보이는 맑은 두도백하가 마을주위를 감돌아 흐르며 선경과도 같은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광물질이 풍부한 약수의 고장으로 소문이 높고 마을을 둘러싼 울창한 원시림속에는 각종 산나물을 비롯해 특산물이 매우 풍부하여 살기좋은 고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선모, 김룡순 로인내외가 약수동골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70년대 중반이다.

1975년 1월, 강선모는 안도현 두도백하료양원에서 일했다. .

두도백하료양원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주장 주덕해동지의 직접적인 지시와 관심하에 1956년에 설립된 간부료양원이다.

그 시기 료양원에는 항일전쟁, 해방전쟁 등 가렬처렬한 전쟁년대에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며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피흘리며 싸워 공훈을 세운 200여명 전투영웅들이 병을 치료하며 료양하고 있었다.

강선모는 료양원의 전투영웅들을 자기의 친혈육으로 여기고 살뜰히 보살폈다.

전투영웅들을 보살핀다는 그 자체가 더없이 긍지이고  영광이였다며 아무리 쉼없이 일해도 힘든줄 몰랐다고 강선모씨는 당년의 심정을 고스란히 기자에게 말하였다.

1975년 8월의 어느날, 강선모는 안도현 만보향에 살고 있는 넷째 아주머니로부터 인편에 “본 마을에 이쁘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있으니 속히 와서 선을 보라”는 소식을  접했다

청가를 맡고 서둘러 이튿날 만보향에 가서 22살의 꽃다운 한 처녀와 맞선을 보았는데 그가 바로 김룡순씨였다. 그날 그들 둘은  서로가 첫눈에 반해서 결혼까지 약속했다고 한다.

그 이듬해 정월초이튿날 이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따라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전설처럼 기온이 상승하며 대지에 쌓인 함박눈이 녹아내리고 어디선가 예쁜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서 신부 김룡순씨의 머리우에 내려앉아 결혼식에서 신기한 화제로 되였다고 한다.

마음씨 착한 신부 김룡순씨는 강씨네 집안에 들어와서 가족들을 이끌고 료양원의 130무의 밭을 부쳐 콩,옥수수, 채소를 재배하여 료양원에 공급하였다.

그녀는 일 잘하고 알뜰하고 처사 또한 잘해서 가족 모두의 화목을 이끌었다.

강선모씨 일가족과 사업파트너 최창룡씨(오른쪽 첫번째).

청정자연속의 명실상부한 자연인의 삶으로

1982년 연변 안도현 두도백하료양원은 운영난으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철페되고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떠났지만 강선모, 김룡순 부부는 정책락실로 당시 안도현 위생국으로부터 가옥과 토지를 분배받으며 약수동골의 농업호적으로 남았다.

2010년부터 장백산 관광이 활성화됨에 따라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이게 늘어났다.

강선모, 김룡순 부부는 식당을 차리고 장백산 청정지역에서 나는 산나물과 물고기, 토닭곰, 토닭알, 오리알…등 특산물을 식탁에 올리며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다.

강선모, 김룡순 부부의 일상은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강선모씨는 마을옆으로 감돌아 흐르는 투도백하에서 전날 저녁에 강물에 담궈놓은 물고기발을 거둬들이고 안해 김룡순은 채소를 다듬고 닭, 오리, 게사니 등 가금류에 먹이를 준후  하루 식객을 맞을 차비를 하는것이다.

딸부부와 함께 물고기를 말리우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김룡순씨(가운데).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이 단골이였고 혹간 장백산관광을 왔다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국내외 관광객들도 있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찾아오는 손님들은 광물질함량이 풍부하고  자연소다맛으로  목구멍까지 시원한  약수동 샘물을 마시고 지역 청정특산물을 마음껏 맛보면서 저마다 만족감에 사로잡히군 했다.

멀리 상해에서 가족들과 함께 장백산에 관광으로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들렸다는 왕씨 손님은 자신은 해마다 가족들과 함께 강선모씨네 집을 찾아온다며 “장백산지역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이곳의 음식은 별미이고 더욱 강선모, 김룡순 내외의 인품이 무척 돋보인다.”고 엄지를 척~ 내밀며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코로나19 여파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왕년에 비해 적지만 강선모, 김룡순 내외는 손님들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고 즐거워하면 자기네 마음이 족하기만 하다고 말한다..

채집한 명이(한초)나물을  운반하고 있는 강선모,김룡순부부.

계절에 따라 이들의 손길과 발길은 한시도 멈춘적이 없다.그렇게 매일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살다보니 이들은 생업 외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겨울이면 일년간 사용할 땔나무 준비로 산에 오르고 경칩이 지나 춘분이 오면 물기가 오른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뽑는 일을 다그친다. 수액을 뽑는 일은 약 한달가량 지속된다.

고로쇠나무에서 뽑은 수액은 당뇨나 간질환, 무릎관절염 등 각종 질병 치료에 좋단다.

빨때기가 달린 주사바늘을 고로쇠나무에 꽂고 빈 물통을 매달아 놓으면 12시간이 되여야 수액을 한 나무에서 겨우 평균 2근, 많을 때라야 5근 밖에 뽑아낼 수 없단다.

고로쇠나무 수액을 뽑는 철이 지나면 4월초부터 시작해 달래, 민들레, 명이(한초), 지장나물, 참나물,물쑥, 오갈피, 호박나물, 곰취…등 20여가지가 넘는 청정자연 산나물이 선후로 산과 들에서 돋아난다.

약수동골의 산나물은 기타 지구의 같은 종류의 산나물에 비해 부드럽고 맛이 좋아 지역 외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이들 내외는 농민들이 채집한 산나물을 현지에서 팔고 사게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편리를 도모해주었다.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와 산나물 수량이 규모를 이루게 되자 지난해부터 이들 내외는 연길시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최창룡씨와 합작해 약수동골의 고로쇠나무 수액과 산나물을 포함한 특산물을 국내에 판매하면서 판로망을 넓히기 시작하였다.

받아들인 산나물은 우선 연길로 운반된다음 다시 국내 대도시 사용호들에 물류와 택배를 통해 운송되였다.

산나물을 보관하기 위해 신축한 창고.

고로쇠나무 수액과 산나물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강선모, 김룡순 내외는 지난해에 2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창고를 신축하고 내부에 랭장실도 마련하였다.

올봄에 이들이 채취한 고로쇠나무 수액 10여톤은 예약에 따라 이미 전부 판매되였고 받아들인 산나물은 벌써 5,000여근에 달한다.

사업파트너 최창룡씨는 “농민들이 알심들여 채집하고 강선모, 김룡순 내외가 정성들여 사들인 자연산나물을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족가정들을 중심으로 모든 소비자들의 밥상우에까지 차질없이 안전하게 올리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고 하면서 “강선모, 김룡순 내외는 자신들만을 위하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곳 농민들을 위해 살아가는 청정자연과도 같이 마음씨 착한 사람들이다.”라고 부언하였다.

요즘 매일 저녁녘이면 이들의 집주위는 산나물을 채취하고 바로 팔러 오는 주변의 농민들로 북적인다.

채집한 산나물을 팔아  현장에서 돈을 결재받고 기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손전련씨(왼쪽).

두도촌에 살고 있는 손전련씨도 그중 한 일원이다.

지난해에 그는 산나물을 팔아 수입 3000여원을 올렸고 올해에도 이미 4000여원 올렸다. 그녀는 “하루 반나절 산나물을 채집하느라 심신이 힘들었지만 산나물을 제때에 팔아 빨깍빨깍한 새 지폐를 손에 받아쥘 때면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차지한 것만 같은 흥겨운 기분이다.”고 하면서 산나물 채집은 당지 농민들의 중요한 치부 도경이라고 말했다.

강선모, 김룡순 내외는 산나물값을 미루어 낸는 일이 종래로 없었고 바로 현장에서 현금을 지불해주고 값도 푼푼히 쳐주는 후한 인심을 가진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당지 농민들은 강선모, 김룡순 부부를 “농민들을 위하는 약수동골의 자연인”이라고 정답게 부르고 있다.

남편과 함께 부모의 일손을 도우러 온 강선모, 김룡순 부부의 딸 강경숙씨는 “부모님들은 반세기가 거의 되여가는 동안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자식들과 가족들을 사랑하고 주위사람들을 돕고 베풀며 살아가는 순수한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모님들에 대한 진솔한 인상을 터놓았다.

청정자연 약수동골에 위치한 강선모내외가 살고 있는 가옥.

청정자연속의 명실상부한 자연인으로서 이들 내외의 삶은 자연의 절주에 따라 쉼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지만 지금도 활발한 진행형이다.

취재를 마칠무렵, 강선모, 김룡순 부부는 지금까지 살아온 자연인의 삶에 대한 미련을 몇마디로 토로하였다.

“당의 정책이 좋아 심산벽지에서도 돈을 벌수 있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어 언제나 고마울 뿐입니다.”

“지나온 세월을 약수동골에서 자연인으로 살아온 삶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세월이 정말 좋고 살맛이 납니다. 다음 생애에 다시 태여난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부부가 되고 약수동골의 자연인으로 살 것입니다.”

/길림신문 강동춘특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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