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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35]작가에게는 라스트선이 없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1-22 09:01:09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35](림원춘편-7)

제가 금년 9월 27일에 주당위 선전부와 연변작가협회에서 공동 주최한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한 작가에게는 시작만 있을 뿐 끝이 없다.”다시 말하면 한 작가에게는 스타트선만 있을 뿐 라스트선은 없다는 뜻인데 왜서 이런 말을 하였는가 하면 제가 작가협회에서 1996년도에 퇴직하였지만 그 후에도 글을 썼거니와 적잖은 일을 하였어요. 저는 지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할 일은 많고 앞길은 짧다.

2019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시상식 한 장면.

할 일은 진짜 많아요. 제가 2013년부터 우리의 작가협회와 우리의 자라나는 후대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글도 글이지만 젊은 세대들 양성과 경제형편이 어려워 아무런 활동도 조직하지 못하는 우리의 문화단체들, 작가협회기관 산하의 문화단체들을 위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하여야 하는가? 제가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어요.

창작도 창작이지만 후배들을 양성하는 이 문제를 의사일정에 올려놓고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제한테 은인이 나타났어요.

80세 고령에 창작한 장편소설 《산귀신》으로 공로상을 수상.

2010년도였을 겁니다. 심양조선족작가협회에서 문학강의를 부탁해왔어요. 제가 응해서 료녕성 단동 태평양발전소에 가서 문학강의를 하게 되였어요. 문학강의가 끝나서 한마디를 했지요. “심양의 작가들은 얼마나 좋겠는가? 훌륭한 기업가들이 많아서 경제곤난이 없겠지만 우리 연변작가협회는 일전한푼 들어올 데가 없어서 경제곤난을 받고 있다. 전국에서 연변작가협회처럼 가난한 작가협회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다 잊어 버리고 후에 무슨 수술인가 하고(일생동안 11차례의 큰 수술을 하였어요.) 전열선염수술, 고환급성염수술 3차례 이렇게 열한번 수술대에 올랐지만 작가협회를 잊지 않았어요.

그때 아마 척추수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누워있었는데 우연하게 전화가 왔어요. 심양에서 왔는데 나를 찾는다고. 그래서 신세기호텔에 가서 보니까 내가 강의할 때 참가하였던 학생이였어요. 그분이 나를 찾아요.

2015년 6월 12일, 훈춘시제1실험소학교 백일장시상식에서 발언하는 림원춘소설가.

그래서 앉아서 반갑게 인사하고 다방에서 차 한잔 마시는데 그분이 나를 보고 “그때 선생님께서 연변작가협회가 전국 작가협회중 성급작가협회와 어깨 나란히 전국작가협회활동에 참가하면서 성급대우를 받지만 돈이 없어서 곤난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선생님의 곤난을 좀 얘기해주세요.” 이러더구만. 그래서 제가 “말해서 쓸데 있겠는가. 곤난은 많지만 해결하지 못하는데야 방법이 없지무.” 이랬더니, 그분이 “말씀하시라.”고 하더구만. 그래서 방법이 있는가구 물었지.

안청락이라고 하는 분으로 상익그룹 회장인데 이 분이 나보고 “요구를 제기해 주십시오.” 이래서 제가 현재 작가협회에서 여러가지 상을 설치하였고 상금 만원이 최고급인데 한 2만원 되게 상을 걸면 좋지 않겠는가 했더니 그분이 무슨 상을 걸겠는가고 물어요. 그래서 “장편소설, 중편소설 이런 소설상은 다 있으니 평전에 상을 설치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말했어요.

주덕해, 한락연, 최채 등 우리 민족의 저명한 인물들이 많고 최근년간 이들을 쓴 평전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취지에서 실화문학상을 설치하면 어떻겠는가고 제안했더니 그분이 좋다고 하면서 얼마면 되는가고 묻더군요. 그래서 제가 돈을 많이 불려서 “대상에 2만원, 보통상에 1만원 이렇게 상금은 3만원으로 하고 경비와 심사비용까지 해서 5만원만 대줄수 없겠는가?” 했더니 그분이 문제없다고 하면서 동의하더군.

2015년 7월 24일, 향토작가 리태수창작세미나에서 발언하는 림원춘소설가.

그러면서 내가 병치료를 하는 걸 알고 병치료에 보태라고 돈 만원을 주면서 “자주 련락을 취합시다!”고 말하더구만.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분이 준 돈 만원은 내가 써도 되지만 나보다 어려운 분들한테 돌리기로 하고 작가협회 주석한테 생활이 어려운 작가를 소개받고 화룡의 리근영시인과 안도의 김일량시인한테 5000원씩 창작보조금으로 주었어요. 이렇게 그분이 병치료를 하라고 준 돈을 일전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그분한테 전해졌지요. (돈을 드렸는데 그분이 이런데다 썼구나)! 하면서 제가 신용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해에 그분이 돈 5만원을 보내와 실화문학상 시상식을 하고 이듬해에도 했어요.

그후 제가 그분을 보고 실화문학상만 해서는 되겠는가 우리 조선족애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많다. 그러니 여유가 생기면 좀 더 후원하면 좋지 않겠는가 했더니 얼마면 되는가고 묻더구만 그래서 보고서를 썼어요. 훈춘실험1소의 백일장, 예술절, 소설가협회와 단풍수필회, 시인협회와 각 현시 작가협회 이렇게 20여만원을 보고했더니 그분이 딱 그 액수를 보내주더구만요. 감개무량했어요.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연변주내 조선족문학단체와 각 협회에 5천원 내지 만원씩, 내가 한푼도 다치지 않고 그돈을, 20몇만원을 약속한대로 전달하고 수령증을 받아서 정리하여 그분한테 보내주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나보고 하는 말이 “다른 요구는 없습니다. 선생님, 돈이 필요할 때면 저하고 말하세요.” 하더구만.

그후에 20몇만원부터 30만원으로 올라갔어요. 무턱 대고 많이 달라고 하면 힘들겠지요. 은숙(시인 임은숙)이가 이 일을 다 알고 있어요. 은숙이가 생활이 곤난하고 제가 글을 쓰면 다 타자해주고 그러면서 도와주는데 직업도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어렵게 보내면서 시를 써서 시집을 내게 되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분한테 공개적으로 말해서 그분의 도움으로 시집을 내게 되였어요. 시집 2권을 출간하였는데 한번에 2만원씩 지원해주고 지금 세번째 시집을 내겠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지금 기업들의 형편이 힘들거든요.

이런 일을 5년동안 해오고 있는데 금년(2019년)에는 화룡신동소학교, 훈춘시제1실험소학교, 훈춘시4소, 도문시제2실험소학교, 룡정시북안소학교 등 학교들의 생활이 어려운 소학생 20명을 선택하여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마다 5천원씩 주기로 해마다 10만원씩 전달하였습니다. 훈춘제1실험소학교는 이미 5년이 됩니다. 한 학생은 이미 매년 5천원씩 받았고 학교는 1만7천워씩 후원받아 백일장과 예술절을 개최하였습니다.

2016년 1월 15일, 룡정시작가협회에 활동자금을 전달하는 림원춘소설가.

여기서 보면 돈을 얻어주어서 자랑스럽다는 것보다도 이 돈으로 백일장을 진행하여 학생들의 글짓기수준이 제고되는 것이 눈에 뜨이게 팍팍 알리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이 일을 계속 견지할 예산입니다. 현재 그분 사정이 좀 어려운 것 같은데… 명년에도 문화단체와 학생들의 장학금은 계속 견지할 예산입니다.

그리고 나는 딱 자랑스럽다는게 좋은 작품을 써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가 문학인재를 배양하고 그들의 선생이 된다는 것이 우리 민족을 위해서 더 자랑스럽습니다. 여기 내 학생이라고 취급하는 제가 배양한 중견작가들도 많습니다. 이미 세상을 뜬 분들도 있지만 방송국에 있을 때나 작가협회에 와서 함께 한 동년배들도 많습니다.

리근영도 그렇고 취재를 하면서 소통도 많이 하고 이미 세상을 떴지만 이름난 작가 박은은 밥을 사들고 우리 집에 다녔어요. 박은 뿐이 아니라 어린 작가들도 많아요.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이미 퇴직한 남복실이는 이름난 수필가지요. 김순희도 좋고 후배작가들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낸 분들 뿐만 아니라 지금 자라나고 있는 연변1중, 사범학교의 학생들, 연변대학 종소리문학사의 애들도 작가협회에서 조직하여 이름을 걸고 활동을 조직해주고 하였습니다.

연변시인협회 전병칠회장과 함께.

그들한테서 선생으로 불리우면서 또 그들한테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애들한테서 내 작품의 소재로 되는 내용을 얻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선생으로 되였을뿐만 아니라 훌륭한 학생으로 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가운데서 급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주환경보호관리국에 정창권이라는 분은 문학을 시작한지 이미 30여년이 되는데 소설 첫 단계부터 선생이나 다름없이 보냈습니다. 후에 행정급으로 옮기면서 창작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 퇴직하면 글을 계속 쓰겠다고 말합니다.

지금 저의 처지는 진짜 할 일은 많고 앞길은 짧은 처지입니다. 어떻게 앞길을 늘구어야 하겠는데 자연적으로 생명이란 자체는 늘구는 재간이 없으니까.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문화사업을 계속 할 예산입니다.

그리고 상도 저만큼 크고 작은 상을 받은 작가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수량도 많거니와 큰상도 받았고. 그러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상은 너의 잠시간의 얼굴에 빛을 내주었을 뿐이고 상이라는 것은 그 작가의 한시기만 빛내줄 뿐이며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상을 위해서 상을 탐내지 말라고, 마지막에 작가에게는 글이 남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 작가에게는 스타트선만 있을 뿐 라스트선은 없습니다. 이 말처럼 나는 죽을 때까지 붓끝을 꺾지 않고 내가 하고 있는 이 사업을 끝내지 않을 것입니다.

림원춘 편 전부 끝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기자 영상 김성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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