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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노트-유려] 별, 창작의 그 신화

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1-03 13:30:14 ] 클릭: [ ]

저는 생 떽쥐베리가 창백한 이마의 “어린 왕자”를 품에 안고 가는 비행사를 묘사할 때, 그리고 뱀한테 물려 죽으면 별에 있는 사랑하는 장미의 곁으로 간다고 생각하여 뱀한테 물리는 어린 왕자를 묘사할 때, 삶에 대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리해를 가진 어린 주인공을 뱀에 물려 죽게 할 때… 그 대목을 쓰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였을가를 생각을 해봅니다.

레브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쓸때 그가 마지막 숨을 톱는 그 장면을 묘사할때 그는 또 어떤 마음이였을가…

심리적인 짜릿함을 주기 위해 수많은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으로 하여금 인위적인 우여곡절을 겪에 하여 대중의 인기를 자아내는데 능한 이야기꾼들과 달리 자신의 삶과 영혼을 퍼부어 그를 닮은 주인공을 만들고 그 주인공과 함께 자신의 삶을 울고 웃는 작가들은 인간 내면의 객관적 진실을 써내어 인간세상에 기여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린 왕자”가 주는 메세지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언젠가 오게 될 우리의 맨 나중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합니다. 유망한 법관인 이반 일리이치가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 자기의 삶에만 몰두하는 자녀들과 안해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절망은 어떠했을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가 살아온 모든 삶에 대한 뼈저린 후회를 안고 마지막 숨을 톱는 그 호흡에 대한 묘사는 저의 영혼을 후벼팠고 저는 그때부터 정신을 차려 나한테 주어진 삶을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게 저의 고중시절이였습니다. 그때 저의 엄마는 구급실에 몇번씩 드나들면서 아프셨고 사춘기였던 저는 죽음에 대한 답을 알고만 싶었습니다. 엄마를 다시 못보면 어쩌지 하는 그 하늘을 꽉 메우는 먹장구름 같은 무거움과 걱정을 안고 있는 저한테 이 작품의 의미는 너무나 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였습니다. 그 누구도 다독여줄수 없었던 크나큰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을때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하여 저한테 용기를 가지고 삶의 진실을 제대로 대면하라고 엄숙하게 알려주었고 그것은 “다 괜찮아!” 라고 하는 위로보다 제 삶에 진실로 도움이 되였던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를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때 서점에서 산 청소년을 위한 단편소설집에는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수두룩 들어있었고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이야기는 수십번 읽어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것, 바보 같은 선행에도 꼭 좋은 보답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문학전공을 공부하면서 톨스토이의 일생을 보고 참으로 놀랐습니다. 그렇게 저의 영혼을 울려주던 고귀한 작품을 쓴 작가의 인생의 모순적인 모습, 타락과 선행 그리고 고뇌와 방탕함이 교차되는 그 일생을 보면서 저는 제가 얼마나 단면적인 삶을 알고 있는지를 알게 되였습니다. 저와 톨스토이의 만남은 이렇게 다이나믹했습니다. 그게 저한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저의 삶에 대한 사고를 더욱 깊게 할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반 고흐와 윤동주입니다. “어린 왕자”가 찾아간 별은, 반고흐와 윤동주도 작품중에도 등장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시구를 쓴 윤동주의 “별을 노래한다”는 결코 가벼운 노래가 아닐것입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 되는 노래는 결코 쉽게 불러질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시구뒤에 나오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는 그게 인생에 대한 얼마나 깊은 고뇌의 끝에 찾은 답일지를 느껴봅니다.

계속 아프시던 저의 엄마는 아홉번째 중풍을 맞고 더 이상 의식을 차리지 못하시고 눈은 뜨고 계시지만 사랑하는 딸인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눈을 그토록 애타게 보며 애원하듯이 “엄마! 나야~ 나!! 나 왔어! 엄마 딸이 왔어!”, “엄마, 나는 여기있는데, 엄마도 여기 있는데 엄마는 어디있어?” 오열하며 수없이 물어보았습니다. 지치게 울다가 우연하게 내다본 창밖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한없는 절망의 마음으로 밤하늘을 우러러 봤을 때 빛으로 모든 어둠을 진동하며 내 눈동자가 시리도록 나한테 다가오는 별들, 감당할수 없는 부담감과 같은 거물처럼 나한테 희미하게 그리고 또 명확하게 다가오는 별빛들이 나한테 주는 깨달음은… 죽음, 그것을 넘어서는 이들도 있고 그것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며 떠나야만 하는 이들도 있다는것… 나는 드디어 진정으로 대면해야만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반고흐의 미술 작품 “별이 빛나는 밤”과 윤동주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그 둘은 그리도 일치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가요? 그 노래는 대체 어떤 노래여야만 할가요! 모든 살아가는것을 사랑하는것이 아닌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가요? 더 이상 기쁨도 힘을 잃고 희망도 간곳이 없는곳에서 부르는 노래…

저는 그곳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엄마 먼저, 나중에는 제가 갈 그곳을 바라봅니다. 내게 이야기로 다가와 삶을 만져준 별을 사랑하는 이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이들이 바라봤던 그곳… 그래서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서 저의 가장 깊은 곳의 실존적인 외로움은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저는 환상과 상상을 좋아합니다. 그 곳의 넘쳐나는 신화와 같은 세상을 이 세상에 그려보고 그 진실함과 진정함을 짚어보고 나면 제안의 열정은 “그곳”에 대한 열망을 닮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저의 전공은 문학이였고 한때 문학을 사랑한다고 떠벌이며 다닌적도 있지만 더 이상 저한테 문학은 학문이 아닙니다. 제 삶을 글로 써내고 그것으로 진실한 삶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마치 칼 융이 신화를 통해 인류세계를 보았듯이 저는 작게는 한 인간의 상상으로 써낸 작품너머의 그 작가들을 만나봅니다. 저는 그런 만남만큼 좋은 만남이 있을가 생각을 합니다. 이런 진실함은 객관적인 현실의 진실함을 초월한 마음의 진실함입니다. 그러한 진실함으로 저를 만나준 작가들은 아직도 저의 삶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병환에 계신 엄마와 함께 지낸 암울한 청소년 시절에 저를 만나준 톨스토이가 그랬고 꿈 많은 대학시절 문학공부를 하며 도서관에서 만난 생 떽쥐베리, 저의 교수님을 통해 만난 수많은 시인중에 유독 깊이 저를 만나준 윤동주도 그랬습니다. 한두개의 형용사나 감정단어들로 절때 표현이 불가능한 내 마음들을 만져주고 읽어주고 그렇게 제 삶에 가장 큰 선물로 다가온 반 고흐의 수많은 미술 작품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제 삶속의 사람들과의 말로하는 만남보다도 더욱 깊이 저를 만나주었습니다. 머리로 만나주지 않고 마음으로 만나주었고 제 영혼을 만졌습니다. 그런 작가들에 대한 사랑으로 저는 때론 작품을 쓴 사람들의 주인공을 보고 또 그 작가의 잠재독자가 누구일가를 상상하군 합니다. 그런 재밌는 상상을 하며 그 작가의 삶의 진실은 무엇일가 그는 삶의 진실을 어떻게 대면하고 풀어갔을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문학작품을 넘어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그 한 인간자체가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작품이 아닐가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상상과 환상의 세상과 현실세상의 관계들을 잘 알고나니 저는 소설을 쓸려고 끄적거리다가 써내려갈수가 없었습니다. 그 인물들의 대화에 몰입해 있다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는 그 인물들이 다 내안의 모습들이여서, 그 인물들 성격과 인물 관계에 투영되는 내 삶속의 모습들이 그 누군가에게 들켜버릴것 같아서 그냥 그곳에서 멈춰버리군 합니다. 저는 써내려갈수가 없었습니다! 그 꾸며낸 이야기속에는 다 내가 원하는것과 이루고 싶은 마음의 진실이 있음을 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의 진실한 상태를 드러내는 작업 그리고 아니라고 오리발 내밀기 작업… 그걸 작가와 독자의 숨박꼭질이라고 누군가가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만난 작가들은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펼쳐내며 저의 마음을 만져 주었지만 저는 아직도 제 진실한 삶을 나누는 작업에 이토록 서투릅니다. 주목을 받고 싶어서 혹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크고 작은 거짓과 허영으로 포장하고는 문학적 기법과 교묘한 장치를 자랑스러워할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작품은 볼품이 없어서 발표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가 제 진실한 삶의 상태를 부끄럼없이 드러내며 삶의 깊이를 파헤치며 그만큼한 깊이로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살다가 힘이 들땐 풀어내지 못한 내 욕망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살냄새가 가득한 글로 내 삶을 풀어야만 하고, 그게 또 저의 재주가 되여 목적성과 공의성이 가득한 글을 쓰는 제가 제일 혐오하는 부류의 글쓰는 사람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또 세상이 저를 아니라고 부정하면 더욱 인정과 주목을 위하여 몸부림 치며 화난 얼굴이 잔뜩 들어있는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스럽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저의 진실한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쩜 아름다움과 하나가 되는 그 길은 바로 사랑스럽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는, 하지만 저 진실한 저 모습을 껴안고 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는 찾아가는 길에 있습니다. 제가 가장 원하는것은 그냥 무척이나 아름다운 순수하게 아름다운 그곳에 푹 빠지고 싶지만 현실은 그게 절때 아니라고 항상 속삭이군 합니다.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여 더욱 가닿고 싶은 곳일지도 모르지만, 저의 현실에서는 보잘것 없어 보이는 작은 매순간에 전부를 바쳐야만 하는 정말로 쉽지 않는 과정이였습니다.

그곳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도 한가득 눈물이 차오릅니다. 그 별을 향해 가는 중에 저는 엄마가 저를 만나주신 그 만남으로, 그 사랑으로 다른 인생과 만남을 이루어가며 이 삶을 사랑할것입니다.

유려(俞丽), 2016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 박사 졸업, 북경 거주. 다수의 시, 산문, 소설 문학평론을 조선족 문학지에 발표, 제20회 재외동포재단 가작상, 2016년 중앙인민방송국 “젊은 작가상” 금상, 2016년 애심녀성 수기 공모 은상, 2016년 효사랑 수기 공모 최우수, 2010년 “시향만리” 문학상 신인상 등 수상, 창작동요 “어디 어디 있나” 2017년 연변인민방송국 6.1절 맞이 특별공연에서 처음 불려짐.

―《도라지》 ‘80시선 2019년 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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