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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광장]우리 노래 알리기에 뭉친‘연변콩나물’

편집/기자: [ 김가혜 김영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10-28 09:50:54 ] 클릭: [ ]

“욕심이 생겼어요. 시작을 했으니 끝장을 봐야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큰 무대에 서보고 싶습니다.”

작업실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는 콩나물밴드 모습.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다. 재능과 끼가 있는 자라면 누구나 얼마든지 미디어를 생산해낼 수 있게 되였다. 더불어 1인 미디어(떠우인 등)가 활성화 되면서 ‘왕훙(网红)’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개인방송이라는 새로운 업종도 생겨났다.

<연변콩나물>이라는 팀명을 쓰는 밴드를 알게 된 것도 떠우인(抖音)을 통해서였다. 수준급 연주에 성수나는 연변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떠우인 계정에서 인상 깊게 보다가 궁금해졌다. 무슨 방송일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무작정 련락하고 인터뷰 요청을 했다.

8월에 ‘데뷔’한 신인밴드라고 소개했다.연변미카예술 박미란(34세) 원장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결성하게 된 밴드. 다섯살 때부터 손풍금을 배웠다는 건반 담당 허청훈씨(34세), 주전공은 새납이였다는 드럼 담당 김설씨(36세), 발라드가 전공이라는 노래 담당 김천씨(33세), 그리고 현재 연변대학예술학원 재학생이라고 소개한 생방송 사회자 담당 채지연씨(21세)까지 네명이 뭉쳤다. 이후 기타를 연주한 세월만 35년,베터랑 기타수 최훈(50세)씨가 동참하면서 밴드조합이 풍부해졌다.

“어릴 때부터 오선보를 보는 게 좋았어요. 오선보에 그려진 음표가 콩나물처럼 생겼잖아요. 그래서 ‘연변콩나물’이라고 하게 되였습니다.” 허청훈씨가 ‘간단하고 쉽게’팀이름을 결정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이루어 졌다.

“그렇다면 연변콩나물은 어떤 취지로 결성된 무엇을 하는 밴드인가요?”

“사실 취지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들 음악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죠. 연변에 밴드문화가 흔하게 있는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우리 연변노래중 명곡도 얼마나 많습니까?!‘조선족 밴드를 결성해 우리의 노래를 알려보자’이런 생각이였죠.”

사실 다섯 멤버 모두 하는 일이 따로 있다. 틈틈히 시간을 짜내서 하는 밴드활동은 어떻게 보면 ‘부업’이다. 그렇다고 수익이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취미와 열정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방송실에 모여 간단한 목풀기와 몸풀기를 끝내고는 곧바로 방송을 시작한다. 금요일에만 떠우인 등 라이브 채널을 켜놓고 생방송을 한다. 기타 요일에는 록화해서 계정에 올린다.

생방송이든 록화방송이든 형식은 비슷하다. 그날 방송 주제에 따라 노래를 선곡하고 사이사이 사전에 받은 신청사연을 읽고 함께 교류하기, 또는 신청곡을 직접 라이브로 불러주며 소통하는 방송이다.

9월말 쯤 인터뷰 차 작업실에 찾아갔을 때가 마침 금요일이여서 전반 생방송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때가 또 마침 새 중국 창건 70주년을 앞둔 시점이라 그날 생방송은 새 중국 창건 70주년 및 연변대학 건교 70주년 맞이 “우리 연변 알리기” 주제로 꾸며졌다.

왼쪽으로부터 기타 담당 최훈씨, 드럼 담당 김설씨, 건반 담당 허청훈씨, 사회자 채지연씨.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

완전 프로 방송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마추어도 아니다. 음악을 전공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하기 위해 시작했고 차츰 관심 있게 지켜보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면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고민도 깊어간다. 라이브 도중 “틀렸어. 다시 다시.”라는 말이 고스란히 방송을 타기도 했고 너무 연주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을 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악플이 달릴 때면 상처도 많이 받고 아직도 심적으로 힘들다.

“악플이 무플보다는 낫지 않을가요? 적어도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잖아요.”멤버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그래도 안좋은 댓글들을 보면 마음이 좀 아프더라구요. 노력하는 면도 봐주시면 좋으실텐데…”나이가 제일 어린 지연씨는 안좋은 글들을 보면 그것이 고스란히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저희가 방송국인줄 알고 음향이 왜 이렇게 안좋냐고 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세요. 처음이다보니 서툰 면이 많죠. 요즘 저도 엄청 열심히 공부 한답니다. 연변 대중가요의 력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연변노래를 소개할 수는 없잖아요.(웃음)”

“연변의 잊혀진 명곡들을 재편곡해 알리고 싶다”고 말하는 박미란씨는 방송을 시작하면서 연변음악 관련 책을 찾아 들었다. 방송 잘 보고 있다며 진심으로 조언을 건네주는 시청자들에게 진보한 모습으로 피드백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로씨야에서 대학을 나왔고 피아노를 전공했다.

콩나물밴드 노래 담당 김천씨.

“단순히 취미로만 계속 하실 건 아니라고 보여지는데 이 밴드와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은 뭘가요?”

“좀 더 성장하고 열심히 음악을 하면서 우리 밴드를 더 큰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박미란씨는 밴드를 널리 알리고 인정 받고 싶다고 했다. 기획자로서 막후에서 열심히 밀어 주겠다고 했다.

“혼자 하면 외로웠는데 함께 모여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우리 민족 음악과 악기를 널리고 알리고 싶어요.”

“연변 뿐 아니라 우리를 수요로 하는 무대가 있으면 가보고 싶습니다..”

다들 음악을 전공한 베테랑들이라 취미로 시작한 밴드라고 말은 했지만 음악적 성취에 대한 욕심은 진지하게 품고 있었다.

그리고 연변에도 음악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26일, '보이는 라지오' 음악쇼 현장.

“몇명이라도 좋아요. 작아도 괜찮아요. 관중이 있는 무대에서 우리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10회 때에는 '보이는 라지오'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니 지난 26일 저녁 연변콩나물 악대가 드디여 작업실이란 공간을 벗어나 처음으로 관중들 앞에 섰다.‘8090추억의 콘서트’라는 주제로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라이브 음악쇼를 개최하였다.

공연은 일체 무료로 진행했다. 공연장소 물색에서부터 초대가수 섭외까지, 그리고 입장권을 배포하고 응원풍선, 물, 간식까지 모든걸 갖춰놓고 관객들을 맞이했다. 공연 전날까지 입장권을 신청한 관객이면 무료로 공연장에 들어가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50~6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신청자수가 의외로 급증하면서 공연장을 큰 장소로 교체하기도 했다. 남녀로소 450명이 현장을 찾아 축제처럼 즐겼다. 호평일색이였다.

아이와 함께 주말 저녁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는 40세 아이엄마도, 며느리와 손자랑 함께 와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는 64세 어르신도, 옛날 노래를 들으며 옛추억을 떠올려 볼 수 있어 좋았다는 관객들도 “귀가 즐거운 공연이였다”고, 앞으로 더 멋진 공연을 기대한다고 후기를 보내왔다.

“보시다 싶이 오늘 우리 밴드 선생님들이 현장분들 덕분에 많이 빛나셨잖아요.”

연변콩나물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번 공연 총책임자 박미란씨는 그래서 더 멋진 공연을 기대한다는 응원에 힘이 난다. 무대와 관중석이 다같이 즐기는 모습을 보니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묵묵히 음악을 해온 선생님들이 빛을 봤으면 좋겠다.”로 시작한 첫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잘해봐야죠. 어떻게든 끝을 봐야겠어요.” 다음 공연도 무척 기대가 된다.

/길림신문 김가혜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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