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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03]이케다 스미에(池田澄江)의 중국정(3)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05 11:27:47 ] 클릭: [ ]

활동실에 모인 일본잔류인 전쟁고아들

중국은 영원한 고향

“부모가 준 생명을 중국이 지켜주고 키워주었습니다.”

이케다 스미에 회장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일본은 나의 조국이고 혈통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중국은 나를 살려주고 키워준 영원한 고향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중일 두 나라는 떼여낼래야 떼여낼 수 없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일본혈통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동북의 한어가 몸에 배인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절대적인 중국 동북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가 가족을 찾은 후의 그의 솔직한 심정을 물었다.

“진정한 나이와 이름을 찾고 혈통을 알게 되여서 너무 기쁩니다. 하지만 가족을 찾지 못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요. 형제자매들 사이에 같은 추억이 없어서 항상 끼이지 못해요. 혈육이지만 너무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서 항상 금 밖에 있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친혈육을 찾았다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양부모와 함께 살았던 고향 목단강에서의 지난 추억이 가장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그것이 모든 잔류고아들의 똑같은 마음이라고 몇번이고 강조해 말했다.

중국귀국자 일중우호회에 대한 요미우리 신문의 보도기사

2005년에 있은 일이다. 한창 단체소송을 하던 시기였던지라 일본에서의 잔류고아들의 처지가 안정되지 못했던 시기였다. 어느 날, 갑자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흑룡강성텔레비죤방송국 법제프로의 담당자였다.

사람을 찾아달라고 했다. 일본인고아를 정성 들여 키워줬더니 일본에 귀국한 후 86세의 양모에게 한번도 련락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나러 온 적도 없는 사람이였다. 양모의 자식들이 그를 상대로 배은망덕한 일본인이라고 소송을 걸었으며 현재 중국 현지 매체에서 널리 알려져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이 찾고 있는 사람은 사카모토(坂本)성으로 살고 있는 잔류고아였다. 그를 찾아간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했다. 사카모토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머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혼자 일본에 온 그가 성인이 된 세 자식을 일본에 데려와서 같이 살려면 일정한 정도의 수입이 있어야 하고 세금을 바쳐야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형편에서 제일 최하층의 일을 해야만 했던 그는 설상가상으로 불편한 다리때문에 실업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처지에 있었던 그에게 하루하루가 고역같은 생활이였다.

그의 처지를 료해하고 난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그번 일이 사카모토 한사람의 일이 아니라 전반 잔류고아들의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간의 료해와 리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얼마 후 무서운 현지 여론을 무릅쓰고 사카모토씨와 함께 할빈으로 향했다. 그는 잔류고아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고민과 처지, 울분을 토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텔레비죤 프로 담당자에게 부탁했다. 두려움에 감히 앞에 나서지 못하는 사카모토씨를 대변한 그는 텔레비죤 화면을 통하여 잔류고아들에 대한 당시 일본정부의 어처구니없는 대우와 기구하다 할 만큼 곤난한 잔류고아들의 실제생활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상세히 설명했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힘을 합쳐 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꼭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때가 되면 당신들의 자식들 모두가 당신들을 뵈러 올 겁니다.”

열렬한 박수 속에서 양아들인 사카모토씨와 양모가 만나게 되였고 장내는 눈물바다에 잠겨버렸다. 리해와 화해가 뒤엉키는 순간이였고 모자간의 정이 다시 끓는 시각이였다.

국경 60주년을 맞이한 2009년과 항일전쟁승리 70주년을 맞이한 2015년에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약속 대로 ‘감은단(感恩团)’을 조직하여 할빈과 북경을 방문했다. 키워준 양부모를 찾아 인사를 올리고 중국인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직접 표달하기 위해서였다.

또 한번의 약속이 있었다. 2007년 당시 중국 온가보 총리가 일본방문길에 잔류고아들을 찾아주었다. 그 때 대표로 꽃다발을 드렸던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총리에게 이런 말씀을 올렸다.

“부모가 준 생명을 중국이 지켜주고 키워주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2008년 5월, 사천성 문천현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이케다 스미에 회장은 총리와의 약속을 떠올렸다.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을 실현해야 될 시기라고 생각한 그는 각 지역의 잔류고아대표들과 전화로 토론했다. 그들은 잔류고아네트워크를 리용하여 일본 전국의 잔류고아들을 동원했다. 평소에 아껴 먹고 아껴 쓰던 돈이였다. 전차 한역전 정도는 돈을 절약하느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선뜻이 만엔씩 기부하기 시작했다. 지진이 발생된 후 5일 만에 500만엔, 8일째 되는 날에는 천만엔이 모여졌다. 짧은 기간내에 모아진 1,750만엔을 들고 일본주재 중국대사관을 찾아갔을 때 대사관 일군들은 선뜻이 기부금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생활형편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일본주재 중국대사관이기 때문이였다.

중일우호 태산소학교에 관한 아사히신문의 보도기사

2년 후인 2010년 5월, 그들이 기부한 기부금으로 재건된 사천성 미산시 인수현(眉山市仁寿县)의 〈중일우호태산촌소학교〉 락성기념식에 80명의 잔류고아들이 참석하게 되였다. 새롭게 컴퓨터 6대를 증정한 동시에 매 학생들에게 책가방과 필통을 선물한 이케다 스미에 회장 일행은 은공을 갚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라고 고무력려해주었다.

잔류고아인 노래강사

현재 일본에 있는 잔류일본인고아는 2600명에 달한다.

현재 일본에 있는 잔류일본인고아는 2,600명, 년세는 75세부터 88세 사이이다. 인권문제, 로후대책, 2세와 3세 문제 등 많은 과제를 짊어진 채 력사의 또 다른 한페지를 써가고있는 그들은 전쟁의 무서움과 잔인함을 존재 자체로 설명해주고 있다. 그들은 쟁탈과 박탈의 무서움과 잔인함을 전하는 동시에 인도주의적인 중국의 양부모들에 대하여 대대로 일본인들에게 전설로 남길 것이다.

활동실에서 중국 노래 <바다여, 나의 고향(大海啊, 我的故乡)>을 부르는 그들의 얼굴표정에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 중국의 크기를 보게 되였다. 중국인의 자식이기도 한 그들은 중일친선을 오래도록 이어가야 하는 리유로 될 것이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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