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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명숙, 자동차공장 배구팀에서 활약하던 시절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5-28 07:53:47 ] 클릭: [ ]

[공화국 창건 70돐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8)

ㅡ림명숙, 자동차공장 배구팀에서 활약하던 시절

 
제1자동차공장의 로일대 배구선수 림명숙

제1자동차공장은 초창기에 공장 건설과 생산에 만전을 가하면서 또한 로동자들을 조직하여 문예오락과 체육경기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는 면에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는 조선족남자들은 공장의 축구선수와 코치로 뛰였으며 또 배구에 소질이 있는 일부 조선족녀성들은 공장 배구팀에 가입하여 자신의 장끼를 보여줬다. 1956년에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한 림명숙이 바로 그중의 일원이다.

제1자동차공장 45구역에 위치한 림명숙녀사의 집을 찾아가니 올해 84세를 바라보는 로인은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젊은 시절 운동선수답게 보기에도 시원시원한 성격의 림명숙할머니는 “뭘 한 일이 있다고 그래요. 그저 남들처럼 공장에 출근하다가 퇴직한 할머니인데.”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룡정시 로투구 렴명촌에서 자란 림명숙은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으며 로투구중학교의 운동선수이기도 했다.

1954년 가을 제1자동차공장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장춘으로 금방 왔을 때의 일을 회억하면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는 침대가 희한하게 닭덕대처럼 보였어요. 한어말을 몰라 밖에 나가기도 무서웠지요.”라고 말한다. 얼마후 림명숙은 지금의 서안대로에 있는 제1자동차공장 로동자주택으로 이사를 갔으며 그곳에서 예닐곱 집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주방에서 한족아낙네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지면서 차츰 한어말을 떼기 시작했다.

 
전기기계공장 제4직장 동료들과 함께(중간줄 왼쪽 첫번째)

“1956년에 가족들을 상대로 로동자를 모집했어요. 그때 저는 동력분공장의 산소공급소에 들어갔지요. 그때까지도 한어가 잘 통하지 않아 남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조심스럽게 일을 해야 했었지요.” 처음으로 제1자동차공장 로동자로 되였을 때 심정을 림명숙은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한 2년 동안 일하다가 림명숙은 전기기계분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시절 공장내에서는 가끔 배구경기를 조직하였거든요.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공장내의 경기에 참가했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제1자동차공장 배구팀 선수로까지 뽑혔지 말입니다. 저는 배구팀에서 세터(二传手)로 있었어요.” 림명숙은 수많은 로동자가운데서 뽑혀 올라온 제1자동차공장을 대표하는 배구선수임에도 불구하도 그 경과를 아주 담담하게 얘기한다.

아무리 훌륭한 공격수라고 해도 세터의 도움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림명숙은 대방에서 보내온 공을 재치있게 받아서는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한 자세로 공격수에게 최고의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그 당시 우리 공장하구 그리고 동북사범대학, 려객렬차공장 이런 배구팀들이 장춘에서 소문났지요. 공장의 예예를 빛내기 위해서 우리는 땀 동이를 쏟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펼쳤어요. 그때 자동차공장팀에 저 외에도 조선족배구선수가 한두명 더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어느 한번 림명숙은 젖을 먹는 어린 아들을 두고 연변에 가서 경기를 치르고는 그 자리로 장춘에 돌아온 적도 있다.

퇴직을 앞두고 동료 자매들과 함께(앞중 중간)

전기기계분공장에서는 여러면에서 우수한 림명숙을 발견하고 그를 공장 로동인사부문에 적을 두고 제4직장 재무부서에서 통계를 책임지도록 했다. 림명숙은 “로동인사와 재무부문은 ‘실권'이 좀 있는 곳이였는데 남들은 가고 싶어 했지요. 그러나 평범하게 사는 것을 원했던 저는 처음에는 안가겠다고 우겼어요. 그런데 공장에서는 제가 딱 적임자라면서 수요된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래서 결국에는 갔지요.” 1972년에 재무부서로 자리를 옮겨서 새롭게 일을 시작해서부터 1983년 퇴직할 때까지 림명숙은 단 한번의 실수와 오차도 없이 맡은바 통계사업을 훌륭하게 완성했다.

물질적으로는 비록 힘들고 곤난한 시대였지만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개인의 리해득실을 옴니암니 따지지 않으면서 공헌하던 세월에 림명숙은 맡은바 모든 일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동료와 공장으로부터 그 부지런함과 인간성을 충분히 긍정받았다.

/길림신문 리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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