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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자동차공장 정초식에 참가한 전철도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4-22 10:44:33 ] 클릭: [ ]

[국경70돐 특별기획]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5)

아주 오래전에 단위에서 나눠준 자동차공장 전경 사진은 전철도에게 있어서 ‘보물 1호'나 다름없다.

 제1자동차공장은 지금으로부터 66년전인 1953년 7월 15일에 장춘 서부의 황야, 지금의 자동차공장 1호문 앞에서 성대한 공장 설립 정초식을 가졌다. 력사에 길이 남을 이 정초식에 참가한 조선족이 있으니 그가 바로 37년간 자동차공장 건설과 발전에 말없이 헌신해온 전철도다.

전철도(全铁道), 이름마저 아주 특별하다. “원래는 이름이 한자로 밝을 철(哲)자였는데 어떻게 되다 보니 쇠 ‘철' 자가 되여버렸습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 공장의 친구들은 우스개로 저를 철도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1933년 5월생, 올해 86세에 나는 전철도는 자동차공장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이렇게 서두를 뗐다.

당시 구태현 만보촌에서 살던 전철도가 이른 봄 한창 논밭에서 새해 농사차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장춘에 세워지는 자동차공장 로동자로 뽑혔다는 소식을 갖고 왔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반가운 소식을 접한 그는 기쁜 나머지 일하던 쟁기를 팽개치고 한달음에 촌으로 달려갔다. 알고 보니 자동차공장에서 설립을 앞두고 많은 로동자와 간부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농촌에서 당원과 공청단원들을 대상으로 인력을 모집하던 중 공청단원이였던 20살난 전철도가 행운스럽게 뽑힌 것이였다.

자동차공장 조선족들과 함께(뒤줄 오른쪽 첫번째)

“1953년 4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행장을 챙겨가지고 장춘에 도착하니 그때까지 거리에 눈이 다 녹지 않았더군요. 지금의 인민광장에 위치한 길림성빈관 앞 골목으로 좀 들어가 그 곳에 있는 한 건물에 사람들이 모여서 등록했습니다.” 자동차공장이 한창 주비단계에 있을 때라서 구체적인 직장도 할 일도 없었다. 전철도는 공장에서 꾸리는 남관구 통화로에 있는 간부양성반에 들어가서 학습을 시작하였다.

그해 6월초 중앙정치국에서는 모택동, 류소기, 주은래, 주덕, 등소평 등 국가지도자들이 참석한 회의를 소집하고 3년내에 자동차공장을 건설함과 동시에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6월 9일 모택동 주석은 <3년 동안에 힘써 장춘자동차공장을 건설할 데 관한 중공중앙 지시>에 서명했다.

드디여 자동차공장에서 정초식을 가지는 날인 7월 15일이 돌아왔다. “그날 간부양성반에 참가한 학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했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만두에 죽, 짠지로 아침식사를 챙기고 공장에서 발급한 ‘간부복'을 입고 뻐스에 올라 7시가 좀 넘어서 정초식을 가지는 지금의 자동차공장 1호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간부복'은 밖으로 주머니가 네개 달려있었습니다. 일반 로동자들의 복장과 달랐지요.”

 
자동차공장 동사자들과 함께(중간줄 오른쪽 첫번째)

새중국 공업력사에 큰 획을 남기게 될 정초식 현장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전철도와 간부양성반의 다른 학원들은 격동된 심정을 안고 통일적으로 무대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장엄한 력사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대회가 시작되자 만인이 환호하는 가운데서 기중기 두대가 두폭의 오성붉은기를 서서히 상공으로 들어서 올렸다.

공장설립위원회 주임이며 그 후 제1자동차공장 1임 공장장으로 있었던 요빈의 발언에 이어 기타 지도일군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어서 정초의식이 있었는데 후에 국무원 부총리로 있었던 리람청 등 6명 젊은 공산당원들이 주악과 군중들의 환호성 속에서 모택동 주석이 친필로 제사한 ‘제1자동차제조공장 정초기념'이라고 쓴 한백옥비석을 광장의 중심에 세웠다.

“그날은 몹시 더웠지요. 하지만 우리는 무더운 땡볕 속에서 한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고 마지막까지 지켜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정말로 감동적인 장면들이였지요.” 정초식이 끝난 후  식당에서 점식으로  좀 특별한 료리라도 올랐던가라는 물음에 그는 “아니요, 그냥 이전과 같은 걸로 먹었습니다. 다른 걸 먹었던 기억이 없어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원대표로 활약하던 시절(앞줄 왼쪽 세번째)

그해 8월 전철도는 간부양성반을 마치고 자동차공장에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여러 공장들이 들어서게 될 자리에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치는 일에 참가했으며 공장의 시초가 되는 사업에 직접 참가했다.

전철도는 37년간 제1자동차공장 열에네르기직장, 동력분공장 생산과에서 사업하면서 수차나 선진사업일군, 당원대표로 당선되면서 맡은 바 사업을 책임감 있게 해오다가 1990년에 퇴직하였다.

66년전 제1자동차공장의 정초식에 참가한 조선족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그는 자동차공장에 첫 보습을 박은 사람이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공장을 떠난지도 어언 30년이 되지만 오늘도 그의 집안 정중앙에는 제1자동차공장의 전경을 담은 오랜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걸어놓고 '보물 1호'로 간주하면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리철수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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