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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안광호, 엄필순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11 10:59:41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사급 이상 장령

안광호(安光浩, 1914— 1937):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3사 사장(내정)

원명은 안창준(安昌俊)이고 안창호(安昌浩)라고도 불렀다. 1914년에 조선 황해도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길림성 반석현 서파리하투(西坡璃河套)로 이주했다. 1930년에 아동단 총대장이 되였고 1931년에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에 동북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독립사 사령부 련락병이 되였다.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사령부 경위원이 되여 리홍광을 따라 금천, 휘남, 몽강, 류하, 환인, 흥경 등 일대를 전전하면서 일련의 전투에 참가했다.

1934년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교도퇀 련지도원이 되였고 후에는 군부청년과 과장 및 청년단 군부 조직위원이 되였다. 교도퇀과 함께 양정우의 지휘하에 휘남, 통화, 대황구, 자목태자, 초시 등 곳에서 일본군과 위만군을 습격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1936년에 동북항일련군 제1군 교도퇀 정치위원이 되여 군부와 함께 행동하면서 통화 일대에서 소본량부대와 몇차례의 전투를 진행하였다. 1937년 6월, 제3사 사장 왕인재가 전사한 후 제1군 지휘부에 의해 제3사 사장으로 내정되였다. 그런데 사장으로 정식 부임하지 못하고 7월 중순 신빈현 황토강(黄土崗)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동북항일련군사》)

 

엄필순(厳弼順, ? — 1936):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1군 당위원회 위원 겸 군수처 처장

원명은 엄수명(厳洙明)이며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후방기지 건설 책임자가 되였다. 반석현 경내 홍석립자의 병기수리소, 피복공장, 후방병원을 금천하리로 옮기는 한편 류하현 곡류천(曲柳川, 지금의 통화현 흥림진)에 5개의 병기수리소를 세우고 곡류천, 서남차(西南岔) 등지에 각각 피복공장을 차렸다. 1936년 7월초, ‘하리회의’(河里会議)에서 항일련군 제1로군이 결성되자 중공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1군 당위원회 위원 겸 군수처 처장이 되였다. 이 시기에 또 오성륜, 리상준(즉 리동광) 등과 함께 재만조선인조국광복회 발기인이 되였다. 1936년 하반년 하리후방기지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에 맞서 제1로군 후방부대를 인솔하여 하리후방기지를 몽강, 집안 일대의 심산밀영으로 전이시켰다. 10월에 후방부대가 집안현 대청구(大青溝) 일대로 물자 구입을 나간 사이에 일본수비대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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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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