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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재] 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박한종, 손용호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04 12:53:12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1군―사급 이상 장령

박한종(朴翰宗, 1911—1935):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참모장

원명은 박환종(朴煥宗)이며 1911년에 조선 경상남도 섬천군에서 태여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9살 때 삼촌을 따라 료녕성 청원현 괴마탕으로 이주했다. 1927년에 소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청년회를 설립하고 청년회 부회장이 되여 혁명활동을 진행하다가 삼촌이 반대하자 1928년에 반석현 버리하투로 가서 혁명활동을 계속하였다. 1931년 9.18사변 후 중공반석중심현위 지도하에 로농의용군 결성에 참가하였으며 얼마 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 5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괴뢰군 제5려 제13퇀 제1영에 들어가 반란을 책동하였고 9월 10일, 송국영으로 하여금 350여명의 괴뢰군을 인솔하여 항일투쟁에 뛰여들게 하였다. 1933년 1월 상순, 남만유격총대 제1대대 대대장이 되였고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제1퇀 정치위원이 되였다. 12월 9일, 한개 퇀을 인솔하여 호란진으로 쳐들어가 일본군 군관 후지모도와 괴뢰군 련장을 사살하였다.

1933년 9월부터 1934년 8월 사이에 제1퇀 소년영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30여차례 맞서 싸워 적군 120여명을 살상했고 여러가지 총과 포 84점, 군마 100여필을 로획하였으며 괴뢰군 55명을 포로하였다. 이와 동시에 또 부대를 거느리고 이통, 반석, 화전 등지의 반동지주무장 18갈래를 소멸하였으며 일본군의 앞잡이 60여명을 잡아내고 그들의 각종 무기를 로획하였다. 일본군, 괴뢰군과 싸울 때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적극적으로 당지의 대중을 조직, 발동하였으며 각지에서 청년의용군과 농민자위대를 잇달아 설립하였다. 1934년 11월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참모장이 되였다. 1935년 1월 상순, 괴뢰정안군 리수산부대와 괴뢰군 제5려 제5퇀의 기병련을 습격하는 홍토애(紅土崖)전투에서 불행히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손용호(孫溶浩, ? — 1938): 동북항일련군 제1군 총무처 처장

1932년에 반일지하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여 조선 신의주감옥에 1년간 갇혀있었다. 출옥 후 중공반석중심현위 기관보 《반일청년보》 주필이 되였다. 1937년 겨울, 동북항일련군 제1군 총무처 처장이 되였으며 1938년말에 돈화 경내의 부이하(富爾河)에서 일본군, 괴뢰군과 격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명록》)

/박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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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항일투사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이들과 관련된 연구서적들이 출판되면서 우리 민족 영웅들을 기리고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우리 민족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력사자료 부족, 연구 제한 등으로 아직도 이름도 명예도 남기지 않은 채 땅속에 묻힌 영웅들이 많고도 많다.

이에 《길림신문》은 광범한 독자들의 친족 혹은 아직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조선족 항일투사들의 감동사적(1,000자 좌우)을 접수해 무명영웅과 그들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저 한다.

접수메일: shenyy66@163.com

련계인: 심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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