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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 82]끝없는 노력이 꿈을 이룬다

편집/기자: [ 리전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22 10:59:03 ] 클릭: [ ]

—연변이 낳은 조선족 성악가 방춘월의 추구와 도전

1990년대부터 연변의 방송과 무대를 주름잡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방춘월, 오늘날 그는 멋진 실력으로 성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저명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메조소프라노 방춘월은 현재 천진음악대학교의 성악교수로 일하고 있다. 림산작업소의 종업원으로부터 음악대학의 교수로 되기까지 그는 오로지 성실한 노력으로 지칠줄 모르며 부지런히 달려왔다.

고생스러웠던 어린 시절… 음악의 꿈을 찾다

1973년 길림성 화룡시 로과향 사정곡촌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5남매중 셋째로 태여난 방춘월은 생활고로 힘들게 자랐다. 어린 나이에 좋아하는 음악을 제대로 배우기는커녕 낮에는 공부하고 시간만 나면 부모님 일손을 돕느라 여념이 없었다.

할머니까지 모시는 여덟식구 대가정이라 소학교시절 어린 방춘월은 방과후이면 채 여물지 않은 곡식이삭을 훑어다 디딤방아를 찧어 다음날 식구들의 식량을 해결하군 했었다.

다섯이나 되는 애들을 공부시키느라 그의 부모는 농한기면 허리가 휘여지도록 버들을 베여다 광주리를 결었는데 춘월이를 비롯한 애들도 부모를 돕느라고 방과후이면 버들가지 껍질 벗기기에 나서군했다.

노래를 꽤나 잘 불러 마을에 군일이 있을 때면 노래를 부르군 했던 엄마의 천부를 물려받아서인지 방춘월은 어려서부터 목청이 좋아 노래를 곧잘 불렀다. 새 노래가 나오면 인차 배워냈으며 짬만 나면 라지오를 통해 배운 영화삽곡이나 류행가들을 마을이 떠나가듯이 목청껏 불렀다.

그때 그 시절을 회억하며 방춘월은 이렇게 말한다. “그 년대에 모내기철이면 학교에서 방학을 할 때라 학생들이 총동원되여 모내기방조를 나갔지요. 그때면 제가 논두렁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논두렁은 저의 첫 무대였지요. 제일 많이 부른 노래가 《모내기노래》,《고향산기슭에서》 등 연변가요와 영화삽곡들이였지요. 아마 그때 저의 목청이 좀 텄는가봐요.”

늦깎이 노래공부, 음악인생의 첫 스타트 떼다

연변체육운동학교에서 배구를 전공한 후 화룡림업국에 취직한 방춘월은 어느날에 펼쳐진 화룡림업국 종업원문예경연에서 노래를 잘 불러 호평을 받았다.

이때 방춘월은 자기의 주요 특장이 노래이며 음악이 곧 자기의 추구라고 생각하였다. 그 후로부터 방춘월은 매주마다 연변TV《요청무대》프로에 편지를 써 듣고 싶은 음악을 요청했다. 극성팬이 드물었던 그당시 음악편집을 맡고 있던 리창길선생이 직접 방춘월을 찾아와 그의 노래를 들었다. 방춘월의 노래재능을 발견한 리창길선생은 연변가무단의 림성호선생을 그에게 소개해주었다.

이태리 스칼라오페라단 음악 코치와 음악에 관하여 담론하는 장면

방춘월은 우연한 기회로 그렇게 음악을 배우게 되였고 음악인생의 첫 스타트를 떼였다. 림성호선생의 가르침 하에 가창력이 부쩍 제고되여 조만천과 나란히 화룡에서 조직한 대중무대에 참가할 수 있게 되였다. 그때 조만천은 1등을, 방춘월은 2등을 하였다. 노래실력이 부단히 제고되면서 방춘월은 연변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였다. 그후 방춘월은 음악에서 성공하려면 전업학교에 들어가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당시 연변방송 음악편집인 황상룡선생의 조언을 들으면서 그의 소개로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의 려채옥선생님을 알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방춘월은 1993년에 려채옥선생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성악을 배웠고 예술학교 응시준비를 하는 기간에 1993년 화룡시장컵노래콩클에서 1등을 따내기도 했다.

음악예술의 꿈 품고 상경… 자신의 꿈을 불타게 사랑

방춘월은 꿈을 꾸는것은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방춘월은 자신의 첫 열애 상대는 자신의 꿈이라며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꿈은 반드시 필요하다. 꿈을 향한 길을 택하고 그 꿈을 이루고저 한다면 그 꿈을 불타게 사랑하고 꿈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며 강조했다.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의 2년제 중등전문반에 입학한 방춘월은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학비를 제때에 낼 수 없었고 음악기초지식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다보니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남한테 뒤지고는 못사는 성미인 방춘월은 이를 악물고 백배의 노력으로 미처 못배운 학과목 내용을 전부 소화해냈다. 끝내 2학년에 와서는 그의 공부 성적이 학급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또한 학교에서 조직한 ’12.9’활동에서도 유일한 학생으로 박춘희 등 교원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서서‘사과배 따는 처녀',‘영웅찬가’등 노래를 불러 호평을 받게 되였다.

이렇게 노래공부에서 신심을 갖게 되여 상경을 택하게 된 방춘월, 그는 노래를 더 잘 배워볼 욕심으로 중앙음악학원을 찾아갔다. 연변에서 노래 배우러 북경까지 찾아 왔다는 말에 중앙음악학원 성악교원 주미옥은 방춘월을 뜨겁게 반겨주었다. 주미옥은 방춘월의 오페라 아리아를 들어보고 감탄한 나머지 그를 제자로 받아주었다.

한시간에 100원씩 하는 개별교수비를 물 돈이 없어서 식당에 취직하여 거기서 먹고 자며 일하면서 로임을 앞당겨 타내다 교수비를 물기도 하고 시험날자가 닥쳐올 즈음에는 일할 수 없게 되자 10원짜리 려관지하실에 들어있으며 시험준비를 하기도 하고 그 돈 10원마저도 이어댈수 없게 되니 북경 중국음악대학 주민위원회 사무실의 밤당직을 서주고 난로석탄을 갈아주면서 전업시험을 보았다. 고생 끝에 방춘월은 성악 성적 1등으로, 문화과 성적에서 50점을 우대 받으며 북경 중국음악대학 가극학부에 입학하게 되였다.

꿈을 향한 끝없는 추구…꿈이 깃든 속에 노력이 따른다

북경 중국음악대학에서 진연교수의 가르침을 받으며 4년간 벨칸토창법을 전공한 후 방춘월은 중앙민족악단에 배치 받아 독창가수로 활약했다. 그동안 그는 1999년 11월에 <공작새>컵 전국소수민족 성악콩클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2000년 조선 평양 <4월의 봄>예술축전 성악콩클에서는 금상을, 2001년 한국 <세계 한민족 성악콩클>에서는 은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 향항공연 때에는 당지의 《문화일보》로부터 노래가 경쾌하고 창법이 정확하며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성악가라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졸업한지 20년이 넘었지만 방춘월은 지금도 진연교수와 끈끈한 사생연을 이어가고 있다. 진연교수는 “춘월이는 음악천부가 있는 제자로서 재능이 넘치는 제자입니다. 재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고마워할줄 알고 인품이 훌륭한 학생이죠.”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민다.

배움에 지칠줄 모르는 방춘월은 2001년말 한국 서울대학에 가서 김인혜교수를 만났다. 미국 줄리어드 음악대학 성악박사인 김인혜교수는 방춘월의 노래를 듣고나서 “이처럼 화통한 소리를 구사하는 메조소프라노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앞으로 크게 대성할 소리구나.”라고 하면서 그의 음악기질을 긍정해주고 그를 문하생으로 받아주었다.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한국 서울대학의 음악석사연구생으로 된 방춘월은 새로운 음악탐구에 도전을 걸었다. 끈질긴 노력끝에 2002년 11월, 서울대학에서 2년에 한번씩 하는 정기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이름을 날렸으며 졸업기간에는 독창음악회를 열어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또한 2003년 10월, 한국 고양시체육관에서 있은 중국 향항축구팀 대 한국팀과의 경기와 2004년 3월 3일, 중국축구팀과 한국축구팀의 올림픽 최종예선 때 푸른 잔디우에서 중국국가를 직접 불러 장내의 관중들을 감동시켰다.

그때를 회억하면서 방춘월은 “성악으로 정말 많은 무대에 올라보았지만 올림픽 무대만큼 짜릿하고 벅찬 무대는 없었다. 앞으로도 이처럼 큰 무대가 많이 있겠지만 중국을 대표하여 외국에서 불렀다는데 의의가 더 크고 설레이고 격동된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방춘월은 2005년 천진음악학원 성악학부의 성악교수로 취직하였다. 그는 1대1 교육방식으로 제자들의 음절 하나하나, 가사 한구절한구절까지 세밀하게 잡아주면서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자들이 굽은 길을 적게 걷고 탄탄한 실력을 갖추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방춘월은 천진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방춘월은 12년간 교직에 몸을 담그고 교수와 무대실천을 결부해 자신의 실력을 제고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교단과 무대를 아우르면서 부단히 실력을 련마한 그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방춘월은 2006년에 그리스 제11차 아테네국제성악콩클에서 1등상을, 2007년 전국 9대 예술대학 가극콩클에서 청년교원조 1등상을, 2010년 10월 이딸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성악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국내는 물론 뉴욕, 쏠트시티, 로마, 밀라노, 아테네, 서울, 평양 등 국제무대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이외에도 방춘월은 ‘소프라노-방춘월 독창음악회’‘로시니의 밤—방춘월 독창음악회’‘녀중음 영탄의 밤(咏叹调之夜)—방춘월 독창음악회’등 수차례의 음악회를 펼쳤고 이탈리아 오페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역’에서는 주역 쌍둣자역을 맡아서 열연을 펼쳤고 천진음악학원 오리지널 오페라 '악비'에서는 정동역을, 헨델의 청창극 '메시아', 베토벤 제9교향 합창곡‘환락송' 등에 출연했으며‘한국 상명대학교 개교 80주년 대규모 문예 공연',‘ 중•한교수 교류음악회',‘제9회 오페라 최우수 배우 시상대회',‘한국 오페라 신쇼 음악회’등 행사에 참가하였다. 또한 2018년 제6회 한국춘천 국제콩클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였고‘중국예술가의 음악적 특징', ‘포레예술가곡의 특점 및 가창풍격에 대한 초보적 탐구(初探福列艺术歌曲的特点及演唱风格)',‘고등학교 성악교수중 청년교원들의 역할 현황 론함(浅谈青年教师在高校声乐教学中的现状)’등 저작들을 발표했다.

방춘월은 지금 한국 상명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수료중인데 천진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일주일에 한번씩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오가고 있다.

방춘월은 노력여부에 따라 인생이 그만큼 달라지며 끝없는 도전과 추구로 이루어진 성공의 희열은 값진 것, 즉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결코 그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연변이 낳은 조선족성악가 방춘월씨는 오늘도 음악탐구의 길에서 변함없는 사랑과 드팀없는 노력으로 보람찬 음악인생을 힘차게 엮어가고 있다.

“끝없는 노력이 꿈을 이룬다! 도전하고 노력하라!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보다 나은 래일을 추구하라!” 취재가 끝날 무렵, 방춘월은 후배들에게 이런 말 한마디 남겼다.

길림신문 리전기자

사진: 방춘월 제공

방춘월 예술경력:

1999년 11월에 <공작새>컵 전국소수민족 성악콩클에서 은상 수상.

2000년 조선 평양 <4월의 봄>예술축전 성악콩클에서 금상 수상

2001년 <세계 한민족 성악콩클>에서 은상 수상

2002년 11월에는 서울대학에서 2년에 한번씩하는 정기오페라 ‘까발레리야 루스티까나’에 주역으로 뽑혀 이름을 날림

2003년 10월 한국 고양시체육관에서 있은 중국 향항축구팀 대 한국팀의 경기에서 중국국가를 부름

2004년 최초로 한국 주한대사관에서 <중한교류우호사자>의 상장 수여받음과 아울러 중국 축구팀과 한국 축구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중국국가 부름

2006년 제11차 <아테네 성악콩클>에서 1등상 수상

2007년 전국 9대 음악대학교 성악콩클 성악교수조 1등상 수상

2010년 이태리 로마에서 진행된 <로마성악콩클>에서 1등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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