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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연변추억 8]“이건 대체 무슨 꼴입니까? 짐승입니까!”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9-14 10:40:43 ] 클릭: [ ]

아키코녀사의 연변추억 8

필자로서는 이번 이야기가 가장 빨리 발표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지난 세월 당연하고 태연하고 그럴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모습이 일본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가?

 “나라가 넓고 인구가 많으니까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앞 사람을 제끼지 않으면 순서가 언제될지 모릅니다” 정당하게 피력했던 그 리유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에는 어떤 이미지로 남았을가?

우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과정이기도 하다.

아키코녀사는 이런 추억을 적어 주었다.

연길시제4백화점에는 너무 사고 싶은 물건이 있었다. 수탉모양의 유리로 만든 담배재떨이였다. 수탉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것처럼 만들어진 가로세로 20센치정도의 유리그릇이였다. 수탉의 가슴부분은 둥글하면서도 우묵하게 패여 있어서 와인잔처럼 생겼다. 진한 주홍색의 닭벼슬부분은 곧게 세워져 있었고 날개부분은 점차 연한 색상으로 희미하게 처리되여 있어서 색상이 너무 아름다웠다.

대학숙소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걸리는 제4백화점은 무게있는 회색의 3층건물로서 어딘지 모르게 일본에 있는 니혼바시(日本橋)의 유명백화점인 다카시마야(高島屋)를 작게 만든것 같은 느낌이 들군 하였다. 숙소에서 가까운지라 일보러 나갔다가 돌아 올때면 자주 들리군 하던 곳이였다.

어느 하루 유리로 된 매대에 진렬한 수탉모양의 유리그릇을 발견한 나는 “이걸 좀 보여 주세요”하고 40대쯤 되여 보이는 녀성점원에게 부탁했다. “아주머니 지금 보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뜻밖의 대답에 깜짝 놀란 나는 조금 무섭기도 한 그 점원의 말소리에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단념을 못하고 또 가보군 하였다.

“이 유리그릇은 어디서 만들었어요?” 라고 물었더니 “우리 길림성에서 만들수는 없지 않습니까?! 북조선에서 온 물건입니다. 아주머니 이건 재떨이입니다”라고 대답해 또 한번 깜짝 놀랐다.

당시 연길에는 북조선으로부터 화학섬유물이 많이 들어 오고 있었다. 북조선산 치마저고리감은 색상도 회려하고 질도 좋았을뿐만 아니라 세탁하기도 쉽다고 연대마을 녀성들한테서 들은 적 있지만 그런 장식품까지 팔리고 있는 줄은 몰랐던것이다. 무서운 점원의 목소리가 점점 다정하게 들려 왔다.

헌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책외의 쇼핑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여 이 아름다운 유리용기를 어떻게 손에 넣을가 고민해야 했다. 우선 북조선수입품이라는것과 남편의 간지(干支)가 유(酉:닭띠)이므로 모든 면으로 놓고 보아도 우리와 깊은 인연을 가진 물건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날부터 며칠후 남편이 “신화서점에 갔다가 겸사겸사 백화상점에 들려도 좋아”라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뛰여서 따라 나섰다.

처음엔 무서웠으나 점차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그 녀성점원이 매장의 진렬대안에서 아무말없이 수탉모양의 재떨이를 꺼내 주었다. 바라 보기만 했던 수탉재떨이 두개를 손에 넣게 된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당시 아키코녀사가 연길4백화에서 산 유리재떨이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산 나는 진렬대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돈을 물어야 한다는것을 몰랐다. 상점안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10명좌우의 사람들이 줄서있는것을 발견했다. 그 앞에는 4평방정도 상자모양의 공간이 있었고 앞면은 두터운 유리로 막혀져 있었다. 그 안에는 50대좌우로 보이는 녀성이 서 있었다. 살펴보니 명세표를 넘겨주는, 어른의 손이 겨우 들어 갈만할 정도의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순식간에 줄이 망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 작은 구멍을 향해 돌진했다. 명세표와 돈을 쥔 손을 구멍안에 밀어 넣으면 구멍은 인츰 막혀 버렸다. 그 구멍이 열리면 또 다른 손이 밀고 들어 갔다. 서로 밀치락, 닥치락하면서 뒤엉킴이 반복되였다. 제일 마지막에 줄을 섰던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마치도 원숭이들이 먹이를 두고 싸우는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몸안에서 부글거리다가 나오듯이 서투른 조선말이 불끈 튀여 나왔다.

“이건 대체 무슨 꼴입니까? 짐승입니까!”

<녀성이 절반 하늘을 떠이다>,<떠일수 있다>

나 자신, 녀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자랑으로 삼고 왔던 이 말에 대한 뜨거웠던 마음이 와르륵 무너지는것 같았다.

계산대앞에 모여 있는 대부분이 30대, 40대의 녀성들이였던 것이다…

그날 아키코녀사의 한마디에 모두 아무말없이 줄을 서서 돈을 물었다고 한다. 어찌보면 그들 모두가 아키코녀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혹 아키코녀사의 애정에 넘치는 “방망이”가 모두의 마음을 기분좋게 다듬어 주지 않았을가…

작년에 아키코녀사로부터 두 수탉재떨이중의 하나를 선물로 받은 나는 그분의 아름다운 추억까지 귀하게 소장하리라 다짐을 해본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본문의 기사와 사진은 저작권이 있기에 길림신문과 저자의 허락없이는 무단전재, 배포할수 없습니다)

아키코씨의 당시 추억을 담은 연변의 사진들

그때는 호랑탄자에 애기를 업고 다니는것이 류행이였다

연길시 소시장 모습

시장가게에 진렬된 민족복장들

민족복장차림을 한 시장가게의 예쁜 판매원아가씨

연길시 로천시장모습

조선족 민족복장과 혼례이불

연길시 소시장거리 일각

연변민족옷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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