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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지금23]로인들 마지막길까지 바래드리는 정성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8-29 15:36:24 ] 클릭: [ ]

개혁개방 40주년 기념 특별기획-‘내 고향은 지금’[구태편-홍광촌]

-장춘시 구태구 룡가가두 홍광촌 조선족로인협회를 가보다

마을로인들 마지막길까지 바래주는 장례위원회

“로인협회 분들께서 로심초사하고 도와주신 덕분에 아버지의 후사를 잘 마칠수 있었습니다. 로인협회는 진짜 고향마을 로인분들의 믿음직한 안식처인 것 같습니다. 여러 분이 마을에 계셔서, 독거로인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챙겨주시기에 우리 젊은이들은 마음놓고 외국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디 건강장수하십시오!”

재작년 초, 돌연사한 부친의 장례식을 위해 부랴부랴 고향마을에 달려온 박씨성의 젊은이가 자기의 손을 뜨겁게 잡고 감격에 차서 한 말을 기자에게 되새기는 차영갑로인, 감개가 무량하단다.

올해 72세인 차로인은 현재 장춘시 구태구(九台区) 룡가가두(龙嘉街道) 음마하사회구역(饮马河社区) 홍광촌(红光村)조선족로인협회의 회장이다. 그는 1981년에 설립된 홍광촌조선족로인협회의 제12임 회장이다. 지금 로인협회에는 89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중 80대가 13명, 최고령 로인의 년령이 88세이다.

 

홍광촌조선족로인협회의 협찬금 정황을 소개하는 차영갑 회장

홍광촌의 대부분 로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없다. 촌의 270헥타르의 논을 전부 림강의 모 농업회사에 위탁하여 경영하고 있고 헥타르당 1만 6000원씩이란 계약금을 받기에 수입이 보장되여 있다. 1995년에 당시의 음마하향공급판매합작사에서 퇴직한 차영갑 회장의 경우 한국과 상해에 있는 자식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로인들의 제일 큰 고통은 가족과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다. 자식들이 외국이나 국내 연해도시에 진출한 관계로 신변에 돌봐주는 젊은 자식이 없다. 현재 신변에 일가친척 한명도 없는 독거로인이 12명이다.

차로인이 회장직을 담임한 2년사이에만해도 로인협회의 회원 10명이나 선후로 사망했다. 차회장은 련이어 고독사 하는 로인들이 늘어나는 현실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한다. 살가운 가족들을 외국에 보내놓고 인생의 최후를 쓸쓸하게 마감해야 하는 독거로인들의 평소 생활을 념려하여 로인협회의 회장, 부녀회장과 주요 회원 등 5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를 만들었다.

“장례위원회의 5명 성원들은 언제 걸려올지 모를 독거로인들의 전화에 대비해 핸드폰을 24시간 켜놓습니다. 가끔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전화가 걸려올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요. 저희들은 불철주야 독거로인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생로병사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차회장에 따르면 로인협회는 장례위원회가 주축이 되여 마을에서 로인이 사망하면 시신을 깨끗이 씻고 수의를 갈아입히는 것부터 시작해 구태구병원 안치실에 모시는 등 사후 여러 가지 장례절차들을 책임지고 진행해준다. 마을 로인들이 아프면 구급차를 불러 30여리 떨어진 구태구병원에 모셔가 치료를 받게 한다. 그야말로 자식노롯, 가족노릇을 하는 것이다.

뒤늦게 달려온 유가족들 고마움에 못이겨

로인협회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마을과 사회 각계의 협찬금 내역서를 큼직하게 타자하여 벽에 걸어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후원금 중에는 부친을 잃은 박씨청년처럼 세상뜬 부모님들 후사를 처리하러 고향마을에 다녀왔던 젊은이들이 감사의 뜻으로 특별히 전달해온 돈도 적지 않다.

박씨청년의 부친 박로인은 2016년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60대초반의 아까운 나이에 사망했다. 박로인은 안해와 자식들을 한국에 보내놓고 술로 적막함을 달래였다. 오랜 간염환자인 그는 하루 세끼 술을 떠나지 못했다. 하여 그는 로인협회에서 주요하게 돌보는 관심대상으로 되였다.

홍광촌조선족로인협회 무용팀(자료사진)

몇년래 로인협회에서는 중요한 명절이 다가오면 맛갈진 음식들을 만들어 독거로인 가정들에 전달하군 했다. 이는 이미 습관적인 례의로 되였다. 그날도 설을 앞두고 로인협회에서 갓 앗은 모두부를 들고 박로인의 집에 찾아갔다. 집문을 여러 번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근처에 사는 박로인의 지인한테 보관해두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로인은 이미 숨을 거두었다. 차영갑 회장은 즉시 장례위원회 성원들과 함께 고인의 시신을 깨끗이 씻고 상복을 갈아입힌 후 구태구병원 안치실에 모셨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듣고 부랴부랴 한국에서 달려온 고인의 안해와 자식 등 유가족들은 로인협회의 소행에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비록 고인의 마지막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고향의 로인협회 덕분에 그나마 고인을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되였다면서 손가락으로 눈굽을 찍었다.

젊은이들이 속히 귀향해 창업했으면 좋겠수

현재 촌의 조선족로인들은 전부 촌민위원회 사무청사 서북쪽에 지은 고층아빠트에 이사해 살고있다. 차회장도 78년전에 아빠트에 이사했다. 조선족 촌민들이 살던 단층 전통농가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곳에서 옥수수대가 키돋움을 하고 있었다.

촌에 있는 두개의 게이트볼장에서 게티트볼선수 24명이 4개팀으로 무어 시합을 하고 있다. 평소에 선수들은 주변의 신립촌이나 길림시의 조선족로인들과 자주 경기를 치르군 한다.

 
조선족 촌민들이 살던 단층 전통농가들은 전부 밭으로 변하였다.
 
오는 9월 15일은 홍광촌 설립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경축하기 위해 마을 로인들은 건신무용, 광장무용 련습에 땀동이를 쏟고 있다. 6070대가 위주인 24명 무용팀엔 바깥로인은 단지 4명뿐이다.

촌민위원회 사무청사 2층에 마련된 오락실에는 당구, 바드민톤, 장기, 탁구, 트럼프, 화투, 마작, 다이아몬드 게임(跳棋)이 한창이다.로인들의 웃음소리로 장내가 떠나갈 듯하다. 

하지만 젊은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은 없다. 순간 차영갑 회장의 얼굴엔 그늘이 지였다.

“하긴 지금은 세월이 좋아 위챗으로 영상통화도 자주 할수 있어 자식들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들의 안부를 수시로 묻군 하지요. 그러나 직접 찾아뵙기보다 못하지요. 드문드문 시간을 내여 년로한 부모님들을 찾아뵙는 것이 자식된 도리고 가족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국내에서도 뭐든 잘만 하면 외국에 가서 고생하기보다 낫겠는데…”

말끝을 흐리며 차영갑 회장은 고향 젊은이들더러 속히 귀향해 정착하고 창업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촌의 게이트볼장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홍광촌의 조선족로인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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