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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기 부주석을 추모하여] “조남기 부주석은 저희 대성골안을 3차례나 다녀갔습니다”

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06-22 19:43:43 ] 클릭: [ ]

─ 연변군분구 전임 부사령원이며 안도대성농업종합개발합작사 리사장인 김문원선생이 들려주는 조남기 상장의 이야기(1)

2007년 조남기 부주석(왼쪽으로부터 네번째 사람)이 안도현석문지경성촌 대성골안 김문원의 림지를 찾아주셨을 때 촌민들과 남긴 기념사진./김문원선생 제공

머리글: 연변군분구 전임 부사령원 김문원(67세)선생은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이며 중국인민해방군 현대후근건설의 지도자,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9기 전국위원회 부주석이며 중앙군사위원회 전임 위원이며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전임 부장, 군사과학원 전임 원장인 조남기동지가 서거한 부고를 접한 후 6월 21일에 길림신문사로 찾아왔다.

“가슴이 먹먹하고 애절하기 그지없어 도저히 이 내 마음을 눅잦힐 수가 없습니다. 조남기 부주석(주:전국정협 부주석으로 계실 때의 칭호)이 저희 경성촌 대성골안에 친히 찾아오셔서 저의 손을 잡고 저한테 하나하나 일러주시던 그 때의 정경, 그 때의 매 한마디 말씀이 어제런듯 생생히 떠오릅니다. 이 ‘숙제생’의 ‘숙제’를 한번 더 보셔주실 줄 알았는데…”

그 때의 그 정경을 적으려고 필을 찾아들었다가 밤을 패고 신문사를 찾아온 사연을 말씀하는 김문원선생은 기실 손잡이뜨락또르 발동 수동쇄에 손목을 크게 다친 미열로 글을 쓰기에 무리한 상황이기도 했다.

김문원선생의 군복무 기간은 37년, 그는 전사로부터 시작해 반장, 패장, 련장, 영장, 퇀장, 군분구 참모장, 부사령원 ‘계급장’까지 달았고 로산변경자위반격전, 산불 끄기, 홍수에 훼손된 기초시설 건설 등 중대한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 2등공, 3등공 수차, 심양군구뢰봉영예상장 2차 등 많은 영예를 수여받았으며 연변주당위 상무위원 등 직무를 지니기도 했던 분이다.

2004년에 부사령원 직에서 은퇴한 후 그는 여러 기업이나 단체조직의 특별 초빙을 마다하고 바로 귀향해 지금은 안도현 석문진 대성농업종합개발합작사 법인대표, 리사장이란 ‘농’자 ‘인솔자’로 되였다. 황산을 ‘림해’로, ‘금산’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시골의 빈곤촌, 빈곤농민들을 치부에로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길림성 당위, 정부 그리고 길림성군구로부터 ‘변강 군중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모범’이란 영예를 수여받기도 했다.

“제가 ‘제2전역’(은퇴 후 귀향 창업을 말함)을 시작해 10여년간 초심을 잊지 않고 바른길을 개척해가면서 농민들을 이끌어 저그마한 성적이라도 거두었다면 거기엔 조남기 부주석의 교시와 고무, 배려, 관심이 고스란히 슴배여있습니다.” “그이는 저의 훌륭한 지도자, 훌륭한 인도자(带路人), 훌륭한 스승입니다. 그이야말로 저를 오복투지(五腹投地)하게 한 분입니다.” 김문원선생은 이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세여보니 조남기 부주석을 만난 회수만 열서너번은 족히 되더라구요. 그토록 자상하시고 상상할 수 없이 사려가 깊고 넓으며 멀리 내다보시는 분임을 번번이 깊이 느꼈습니다. 후배, 후대들에 대한 기탁 또한 절절했습니다…”

조남기 부주석과 김문원선생 두분의 인연은 김문원선생이 귀향한 후부터였는데 김문원선생이 들려주는 조남기 부주석의 이야기는 김문원선생의 말 대로 “로장군님이 로병사에 대한 인도와 기탁이였고 국가 고층 국가간부와 기층간부, 인솔자(带头人)와의 이야기이며 궁극적으로는 그이가 마음속에 백성과 미래를 담은 이야기”이다.

조남기 부주석에 대한 김문원선생의 추억과 추모의 감정을 그대로 담기 위해 기자는 기사를 1인칭으로 정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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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이는 저더러 식수를 잘하도록 고무했습니다

-“너(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라게 해보오”

 

 2007년 조남기 부주석(왼쪽 첫 사람)이 대성골안 김문원선생(왼쪽 네번째 사람)의 림지를 찾아주셨을 때 남긴 사진. / 김문원선생 제공

저는 제가 농민의 아들임을 잊은 적 없고 고향을 잊은 적 없습니다.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고향 건설에 작은 힘이라도 이바지하고 싶은 것이 저의 꿈이였습니다. 그래서 2004년 은퇴한 후 저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고향인 안도현 석문진 경성촌의 대성골안에 가서 황산에 재생림지가 섞인 산(213.07헥타르)을 임대해 식수조림을 시작했지요. 조남기 주석은 연변 주요 책임자들과 연변의 식수조림을 의논하던 중 귀향해 식수조림을 한다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는 2007년 8월 15일에 경성촌 대성골안까지 찾아주시였습니다.

제가 부사령원으로 갓 발탁된 지난 세기 90년대 중기에 연변군분구를 시찰 오신 조남기 주석과 공식적으로 첫 대면을 가진 후 10년 만에 만나뵙게 된 거죠. 촌마을에서 제가 식수하며 살고 있는 산꼭대기 외톨집까지 올라가자면 차도 올라갈 수 없는 10여리 되는 흙길을 걸어야 했지만, 게다가 그 전날 내린 큰비로 구간이 흙탕길로 되였지만 조남기 주석은 끝내 저와 함께 그 길을 동행했습니다. 전기도 안 들어간, 제가 살고 있는 외톨집까지 살펴보고 거기서 500메터 떨어진 림지에까지 기어이 걸어가시여 나무들을 살펴보시며 “자네, 식수할 생각을 잘했네. 장한 일일세. 당과 군에서 자네를 헛되이 배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시작한바 하고는 초심을 잊지 말고 견지해야 하오.” 하며 저를 치하하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이의 말씀에서 강한 힘과 용기를 얻었으며 제가 한 선택에 대해 더한층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2009년 8월 5일, 그이가 재차 저희 골안을 찾아주실 줄은 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요. 그 때 저는 이미 5만여그루의 잣나무를 심었고 나무들은 무성해지고 있었습니다.

“자네 참 큰일 하고 있구만. 식수하는 자네는 자네가 군에서 장군으로 있을 때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하네.” 하면서 그이는 “식수조림은 지구에 리롭고 인류에 리로우며 국가에 리롭고 사회에 리로우며 개인에 리로운 장거요…” 하며 식수공정에 내함한 풍부한 내용들을 저한테 ‘보충수업’ 해주었습니다.

“자네가 자네 주머니를 털어 식수한다는 건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서 그 의미가 크네.” 라고 말하면서 그이는 저한테 세가지 일을 잘하라고 당부하시였습니다.

즉 개인적으로 옳바른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으로 고상한 지조를 키워야 하고 식수조림 지원자(志愿者) 대오를 양성하여 공민들의 식수의식, 환경보호의식을 키우도록 영향주어야 하며 차세대를 잘 양성해야 한다는 당부였습니다.

그이는 저의 식수조림공사에 “너(나무)도 자라고 ‘나’도 자라서 나라의 재목으로 되자”는 주제를 제시하시면서 차세대 교육양성사업 프로그람 가입의 의미까지 부여해주었습니다.

저는 조남기 주석의 가르침 대로 ‘숙제’를 하나하나 진지하게 풀어가며 보람차게 ‘답’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현재 저의 조림지에는 소학생으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장군으로부터 현역군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각계 애심협회 인사들, 각급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 사업일군들과 학생들을 포함해 식수 지원자들이 해마다 200여명씩 다녀가고 있습니다.

저의 전우들을 비롯한 군인 지원자들이 찾아와 식수한 ‘전우림’ 및 그 기념비를 세웠는가 하면 주 및 안도현 그리고 연변대학 차세대관심사업위원회와 손 잡고 간고분투, 식수, 환경보호 등 관련 전통교육장소를 만들었으며 학생들과 함께 ‘희망림’ 림지와 기념비도 만들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대상해 전통교육강의를 시작한 지도 어언 5년이 되였습니다.

2009년에 오셨을 때 조남기 주석은 한키 넘게 자란 나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면서 “자네가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어 ‘림해’로 된 걸 보니 해변가에서 일망무제한 바다를 마주한듯 가슴이 후련해나고 기분이 유쾌해지네!” 하며 저의 까칠한 손을 잡아주시면서 “자넨 젊은 몸이 아니니 너무 힘에 부치게 일하지 말아야 하네. 집도 월급까지도 온갖 재산을 다 여기에 부어넣고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요.” 하고는 저의 집사람더러 저의 건강을 잘 돌봐달라고 신신당부하시는 것이였습니다.

조남기 주석은 2011년 8월 24일에 세번째로 저의 대성골안을 찾아주셨습니다. 그 때 그이는 나무를 심어도 과학적으로 심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심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 관리하여 국가와 개인을 위해서라도 재부를 창출해내야 할세. 나무들이 다 재목이 되고 특히 잣나무는 열매가 많이 달리도록 연구해야 하네…”

“반드시 생태, 사회, 경제 세가지 효과성을 창출해야 하네.”

그러면서 그이는 동행한 주림업과학연구원 현영남 원장에게 림업연구원에서 저를 과학적으로 잘 지도하고 부축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3년 전부터 림업국과 림업과학연구원에서는 저를 적극 도와나섰습니다. 정책적 지지를 받는 과학실험기지까지 설립해 실험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2009년 조남기 부주석이 대성골안 림지를 돌아본 후 김문원 부부와 남긴 사진./김문원선생 제공

지금 저의 림지에 심은 잣나무 14만그루, 이깔 4만그루, 홍피운삼 5만그루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조남기 부주석께서 다녀가신 후로부터 저는 우리 내외의 손을 꼭 잡아주시던 조남기 부주석을 그리면서 매일이다 싶이 잣나무를 쳐다보았습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저는 갓 달린 잣송이 800여개를 바라보면서 “올해 조남기 부주석께서 연변에 오시면 꼭 저 잣을 맛보시게 해야지!” 하고 별렀었는데 그이가 이렇게 총망히 돌아가시다니…

조남기 부주석이 지도한 도라지, 개암나무도 지금은 경제적 효과성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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