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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50년11]《연변팀에 오기전에는 그냥 배구선수였지요》

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9-08 07:58:55 ] 클릭: [ ]
연변팀 전국 우승 50돐 기념 계렬보도-《영광의 주인공들을 찾아서》(11)
 
-길림성축구팀 간판수비수 류진석원로
 
 
1963년 을급팀에 강급했다가 그 이듬해 갑급팀에 복귀한 길림성팀, 1965년 갑급련맹경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광주에서 동계훈련에 열을 올리던 중 길림성팀의 4번 선수가 오른쪽 다리를 상하면서 훈련에 비상이 걸렸다.

며칠만 지나면 시작되는 련맹경기에 왼쪽방선과 공격시발점이나 다름없는 주력수비가 상했기때문이다. 그 4번 선수가 바로 당시 28살 나던 류진석이였다. 축구화에 긁힌 오른쪽다리 무릎아래에는 10센치메터 넘는 기다란 상처가 생겼다. 20여바늘을 깁었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피가 샘솟듯 했다.

이해 정해진 목표가 5등안에 드는것이였던 길림성팀의 감독진이 부랴부랴 2조에서 선수를 물색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팀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있는 류진석은 상한 다리가 다칠 때마다 숨이 넘어가는듯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며칠 남은 훈련에서는 두툼한 책을 상처자리에 감고 뛰였으며 치렬한 련맹전에서는 아픈줄을 모르고 뛰였다고 한다. 경기장밖에서는 절뚝거리다가도 경기가 시작되면 자기도 모르게 아픔을 잊었다는것이다.
 
 
1965년 전국축구갑급련맹전 우승후 찍은 단체사진(첫줄 왼쪽세번째 류진석)

1938년 5월 24일, 룡정시 유신촌에서 출생한 류진석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한 축이였는데 소학교 3학년을 다닐 때 륵막염에 걸려 2년간 휴학을 하여야 했다. 그후 룡정시북신소학교를 다니게 되자 키가 훌쩍 커버린 그는 학교에서 륙상선수로 활약했다. 룡정1중(지금의 룡정중학)에 입학한후 그는 학교 배구팀의 선수로 뽑혔고 1959년 11월 연변팀에 들어오기전까지 그는 줄곧 배구선수로 축구무대가 아닌 배구장을 누볐었다. 축구를 해본 경험이라면 간혹 학급의 후보선수로 교내 운동대회를 뛴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가 연변팀에 입대한것은 속도가 빠르고 키가 크고 동작이 민첩했기때문이였다. 연변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운 류진석은 운동소질이 뛰여나 2년만에 정식 경기를 뛸수 있었으며 수비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하여 감독과 선수들의 신임을 얻었다.
 
 
조선출국방문시 모 공장을 참관하고있는 류진석(오른쪽 세번째)

마음이 어질고 순박하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대방의 공격수를 옴짝달싹 못하게 지켰고 민첩하고도 날렵한 동작으로 늘 공을 차단했다. 당시 상해의 한 일간지에서 그가 뽈을 차는 모습을 찍어 신문에 내면서 연변팀의 용맹스럽고 날카로운 풍격을 칭찬한 일까지 있었다.

1965년 전국갑급련맹전에 뛰여든 연변팀의 목표는 5등이였다. 당시 규정에 따라 5등까지의 팀들만 외국방문경기를 치를수 있었기에 5등을 목표로 세운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목표가 올라가 나중에 1등을 쟁취하였는데 점수를 따지면 국가팀이 2위, 8.1팀이 3위였으나 국가팀은 순위에 들지 않아 8.1팀이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당시 국가팀과의 경기가 가장 치렬했는데 국가팀은 길림성팀과의 경기를 조선국가팀과의 경기로 가상승격시키고 국기에 선서의식을 하는 등 매우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였다. 결국 1:2로 졌지만 길림성팀은 중국내 최고의 강팀이였음을 립증했고 많은 관중들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해 연변팀은 전국 1등과 그와 맞먹는 풍격상까지 차지했다.
 
 
1960년대 상해로동자팀과의 경기에서의 류진석(오른쪽)
 
길림성팀이 전국우승을 한 이듬해에 전례없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연변팀을 주축으로 세워진 길림성팀은 난데없는 찬서리를 맞았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운동에 참가하느라 길림성팀은 축구활동에 참가하지 못했으며 1969년에는 해산되기에 이른다. 그해 연길시이앙기공장에 배치받은 류진석은 맡은바 사업에 힘써 생산제일선의 주력일군으로 성장하며 영광스럽게 공산당에 입당한다. 공장에서 일하다가 왼손 무명지 한마디가 잘리는 사고도 당하지만 그는 일주일만에 출근하는 등 축구선수시절의 그 강직한 풍격만은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앙기공장에 근무하면서 류진석은 여러가지 축구경기에 경상적으로 참가하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조선국가팀이 연변을 방문하였을 때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연길공원경기장에서 국제경기에 참가한 일이라고 한다. 당시 30대 초반이였던 그는 원 길림성팀의 선수들과 기관차팀의 선수들로 무어진 팀에 합류하였으며 최종 1:1로 비겼다고 한다.
 
 
1995년 연변로장축구협회 팀원들과 함께 있는 류진석(첫줄 왼쪽 두번째)

1992년에 악성종양으로 번진 눈병으로 일찍 퇴직한 류진석은 연길, 천진, 상해 등지에서 3차례에 걸쳐 큰 수술을 하였지만 몸이 완쾌되자 또다시 뽈을 차면서 축구사랑을 이어왔다. 현재 78세의 고령이지만 류진석옹은 매주 월, 수, 금 아침이면 50대 이상의 축구인들과 함께 연변대학 운동장에서 뽈을 차고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견지하고있는 리유에 대해서는 비록 늦게 배웠지만 축구라는 운동을 너무나 사랑하고있기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류진석옹은 현재 연변장백산팀은 좋은 성적으로 슈퍼리그진출을 앞두고있다고 하면서 만약 연변팀이 슈퍼리그에 진출한다면 해당 부문들에서는 팀의 운영에 경제적부담이 없도록 만단의 준비를 해야 하며 광범한 축구팬들도 고향축구팀을 있는 힘껏 밀어주어야 한다고 표시했다.

현재 연변의 축구발전상황에 대해서는 대부분 잘하고있다고 하면서도 축구는 학교 운동장이나 경기장만 있으면 되는것이 아니고 광범한 중로년축구인들이 부담없이 사용할수 있는 무료운동장, 공익성경기장 같은 군중체육시설도 구비되여야 한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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