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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1]눈시울 붉히는 녀교장과《행복교실》의 주인공 어린이들

편집/기자: [ 신정자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4-07-28 11:45:21 ] 클릭: [ ]

기획-계렬조사보도 《길림성 산재지역 조선족학교에 가보다》(21)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편]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이 초중 2학년 학생들을 지도하고있다.

기자일행이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쌍양조중)를 찾아 3층에 있는 교장실문앞에 이르자 마침 수업을 금방 마친 리미선교장이 두손에 교수안을 든채 미안한 표정으로 총망히 걸어오면서 우리를 회의실에 안내했다. 책상 6개를 두줄로 맞붙쳐놓은 회의실은 작은 교실 한칸으로 대체한것이 분명했다.

《한족학교들은 농촌학교까지 모두 현대화시설을 갖춘 새 교수청사로 일떠섰지만 우리 조선족학교만이 경제난으로 재수건도 하지 못한 80년대 그대로입니다. 정말 남들 보기 부끄럽습니다.》라며 리교장은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장춘시에서 동남쪽으로 67킬로메터 떨어진 도시변두리인 쌍양구에 위치한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는 소학부와 중학부를 포함한 9년일관제학교이다. 학교는 지리위치적 환경영향과 자금난으로 말미암아 학생래원에서부터 교원부족, 학교시설개설문제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고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 하여 리미선교장의 두어깨는 바위돌에 짓눌리우듯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가녀린 새싹이 바위를 이기고 올라오듯이 학교를 굳건히 지켜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나가고있다.

학생모집이 하늘의 별따기,《우리 중학부는 이젠…》

기자가 지난해 봄에 이 학교에 왔을 때까지만도 130여명의 학생들로 꽤 흥성했었다. 헌데 1년이 좀 넘는 사이에 학생이 90명(이중 유치원 22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중학부는 한개 학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가장 가슴을 조이게 하는 일은 학생모집사업입니다.》리교장의 얼굴에는 그늘이 비꼈다. 학생근원을 찾아 매년 7-8월이면 리교장은 쌍양구 산하 8개 촌의 촌주임, 로인협회 등을 통해 조선족가정을 알아본후 전체 교원들을 동원하여 촌마다, 조선족가정마다 훑으며 유치원생과 소학생 모집사업에 땀동이를 쏟는다.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선 해볕이 뜨거운 정오에도 한집한집 찾아다니면서 발에 물집이 생기도록, 목이 쉬도록 조선족학교의 우월성을 선전하면서 아이를 조선족학교에 보내도록 설득을 한다. 이렇게 전력을 몰부어 선전하고 설득을 해도 학부모들이 도리머리를 저을 때면 안타까운 나머지 설음이 북받칠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겨우 모집해온 학생들도 85%가 결손가정 자녀들이다. 그런데 이들마저 소학교를 졸업하면 본교 초중부를 선택하지 않고 조건이 우월한 도시학교로 하나, 둘 가버린다. 지난해부터 련속 2년동안 11명이 떠나갔다.본교 중학부를 선택하면 가장 우월한 혜택을 주면서 봉사하겠다는것도 마다하고말이다. 그 주요원인의 하나가 도시학교에서 많은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단련받아야 한다는 학부모의 주장이다. 그러다보니 이 학교 중학부엔 이제 개학하면 3학년 한개 학년뿐, 학생도 8명뿐이다.

《학생모집이 하늘의 별따기여서 중학부는 이젠…》리교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학구내 조선족아이가 없다 유치원 타민족어린이 받아서라도...

쌍양구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조선족학교를 꼭 지켜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 8개 조선족촌을 빗질해도 조선족아이가 없다. 조사에 따르면 쌍양구 호적인 조선족인구는 총 5255명이지만 이중 실지 남아있는 인구는 이 학교 교직원 43명과 학생 90명(유치원포함)을 포함해서 합계 510명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학교를 살리려면 우리 학교 특색교육으로 주변의 한족아이들이라도 흡인해야 한다》며 리교장은 결책을 내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족아이모집도 조련찮은 일이다. 한족학교상황도 학생래원이 줄어드는 상태라 근년에 유치원부터 초중까지 모두 합병시켜 향마다 현대화시설인 기숙제학교를 새로 세웠다. 또 이 학교와 담 하나 사이두고있는 제1실험유치원은 그 환경조건이 구에선 으뜸유치원으로 꼽히고있다. 이런 상황은 타민족아이들을 모집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리교장은 이번 방학간을 리용해 그동안 동분서주하며 모은 자금으로 우선 유치원환경개설부터 몰입했다. 그리고 개학엔 교원력량을 유치원과 소학교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배운 지식을 익히고있다.

유치원 잘 꾸리려면 교원대오건설이 급선무

유치원은 학교학생래원을 위해 2007년에 교육국의 비준을 거쳐 개설했지만 유치원교원편제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다 얼마전 인사국에서 교원편제명액정리를 하면서 현유의 44명 교원편제를 34명으로 줄이기까지 했다. 학생수가 적은 원인이였다. 하지만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운영하다보니 현유의 교원으로도 모자라 한교원이 소학교와 중학교를 오르내리면서 3가지이상 학과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다. 중학부가 한개 학년밖에 남지 않았다더라도 10년동안 젊은 교원(받은 교원 1명뿐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로령화문제가 엄중해 유치원교수엔 기본적으로 적응할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기숙생이 80%이상이나 점해 사회적으로 6명이나 초빙해 쓰고있다. 이는 학교경제의 어려움을 심화시키고있다.

《교원편제명액을 꼭 회복시키도록 노력할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족교원모집이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초빙한 교원에 대해서는 정식교원으로 임명할수 있는 혜택정책이 따라야만 조선족학교의 신로교원교체문제도 해결될수 있다고 봅니다.》라고 리교장은 해결책을 건의한다.

배려교육으로 학생모두가 주인공인 배움터로 거듭나

밝은 마음 키워가는 정다운 배움터 / 너도 크고 나도 크는 마음의 집이다

사랑으로 써가는 우리의 시험장 / 너도나도 백점이다 자랑스럽다.

이 학교 리미선교장이 작사를 한 교가 《신나는 배움터》의 몇구절이 마음에와 닿는다.

전교 학생 90명(유치원 22명)중 80%이상이 결손자녀이고 기숙생인 상황에서 이 학교는 《배려교육》을 주선으로, 《학생모두가 주인공인 배움터, 누구에게나 기회가 다있는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특색교육을 진행하고있다.

평소 수업에서나 주제반회때나 운동회때나 학기말 총결때나 해마다 맞이하는 학교예술절때나 학교는 《학생 백프로 다 참여》하는 원칙으로 학생마다 발언하고 학생마다 자기의 장끼를 충분히 발휘할수 있는, 너도나도 크는 기회를 마련해고있다. 학생들은 학교의 여러가지 활동으로 누구에게나 자신의 우수작품이 있을뿐만아니라 《독서왕》등 여러가지 영예도 받아안는다. 학교는 시종 우리 민족의 문화, 예술 교육을 살리면서 학생들의 자질교육과 개성발전에 심혈을 기울인 보람으로 학생수가 적은 상황에서 30여명의 학생들이《전국조선족중학생글짓기경연》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또 해마다 장춘조선족중학교 고중입시 승학률은 70%에 달했고 장춘시 민족학교가운데서 시종 제2위를, 몇몇 학생들의 성적은 전 시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또 여러해동안 길림성교육청 황종식처장, 광주모드모아그룹 리성일리사장, 길림공상학원 신봉철서기의 다함없는 배려와 장춘시로인협회, 쌍양구, 경제개발구 등 로인협회의 따뜻한 배려로 조학금, 장학금, 생활품 등 전달식을 가지면서《감은교육》실천활동도 잊지 않았다. 학생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리교장은 몇년동안 모은 원고료 6500여원을 선뜻 내놔 학교장학기금을 마련했다. 교원과 학생, 중학생과 소학생이 짝을 뭇고 1:1로 가르치고 돕는가운데서 공동히 진보하는 배려교육터전은 말그대로 너도나도 크는 마음의 집이다.

과학과수업시간 참 재미있어요.

곡절많은 학교 연혁 및 성과

1965년 8월에 건립된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쌍양조중)는 소학부와 중학부를 포함한 9년제학교이다.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전신은 길림성쌍양현조선족중학교였다. 1965년 8월 15일에 건립된 이 학교는 건립시에 교원이 4명, 학생이58명이였으며 제1임교장은 전영효(全永孝)였다. 1967년 12월에 학교위치를 서령으로 옮긴후 3개 학년을 갖춘 완전초급중학교로 발전하였다. 당시 학생래원은 쌍양현 산하의 8개 향 소학교 졸업생들이여서 대부분 기숙하였다. 1972년에 고중반을 설립하고 1983년에 취소하였다. 1994년 7월 원래의 단층교사를 장춘시제7중등전문학교 3층집교수청사와 바꾸었는데 총면적은 많이 줄어 지금의 1만 평방메터이다.

1995년 쌍양현을 장춘시구역으로 획분하면서 교명을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로 개칭했다. 1996년 8월 산하의 8개 소학교 학생수가 격감하자 이 학교에 기숙제소학교를 세우고 집중시켜 운영하는 길을 열기 시작했고 그 아래에 기숙제 학전반도 꾸렸다. 2007년 8월 해당 부문의 비준을 거쳐 학교 부속유치원인《진달래조선족유치원》(교원편제가 없는 전제에서)을 세우고 소반, 중반, 대반 세 학급을 개설했다. 합병시기의 호황기는 약 2005년부터 2009년사이였다.

학교의 가장 휘황한 시기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기로 학생들이 400여명에 달했다.

학교는 리성균(동북전력대학을 졸업, 현재 길림성전력설계원에서 사업)고급공정사, 리수민(할빈대학 박사학위취득, 현재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사업)고급공정사 등 인재를 배출했는바 서로다른 일터에서 묵묵히 사회에 기여를 하고있다.

학교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문화예술축제의 한 장면.

현재 부지면적이 1만평방메터이고 건축면적이 3619평방메터, 이중 숙소면적이 1900평방메터이고 교수청사면적이 1670평방메터인 학교는 장춘시 쌍양구내 몇십리 안팎의 조선족촌들중 유일한 조선족학교로 남아있다.

현재 90명(유치원포함)의 학생에 43명의 교직원대오로 똘똘 뭉친 본교는 력차의 교수개혁가운데서 부지런히 교수연구에 몰입했는바 《자습법과당교수》, 《과당수업에서의 협동학습》, 《이끌기학습》, 《소조토론》, 《소반화의 우월한 교수리용》 등 참신한 교수법실천으로 특유한 효과를 보았고 학교운영특색교육에서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필수과목과 접목시킴으로써 민족의식을 심어주고있다.

본교는 사생들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길림성중소학교기숙제관리선진학교》, 《장춘시민족단결선진집단》, 《장춘시미성년도덕교육연구선진학교》, 《쌍양구교육계통빈곤돕기선진단위》, 《쌍양구시설수준급우수학교》, 《화원식우수학교》, 《중소학교기술장비표준화학교》 등 영예를 안았다.

학생들이 야외에서 다채로운 종목으로 선보이고있다.

하나같이 똘똘 뭉친 전체 교직원들.

학교 지도부 성원들.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교수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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