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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 갔던 촌민들 돌아오겠다 합니다》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10-15 10:05:10 ] 클릭: [ ]

기획-조선족농촌에 가보다

《농촌을 잘 건설해 놓으면 떠났던 사람들이 꼭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도문시 월청진 수구촌 김광수촌주임의 일가견

《있는 풍경을 그대로 그림에 올리는 사람을 화가라고 부른다면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으면 좋다며 없는 풍경까지 그림에 올리는 화가를 명화가로 부른다.》는 말이 있다.

이에 비춰 말하면 도문시 월청진 수구촌 김광수촌주임(당지부서기 겸임)을 명실공한 명화가라 하겠다.

이 촌에는 최근 5, 6년사이에 초가집개조를 100%완성, 마을 큰 가로등, 마을 골목 태양에너르기가로등, 정자, 운동기재, 도서실, 가로수, 활동실, 렬사기념비, 쓰레기청소차, 표준화울타리, 화장실, 눈치기차량… 아무튼 《아버지가 없이는 살아도 장화가 없이는 못 산다》던 수구촌의 가가호호마당까지 세멘트길로 포장되였다.

이 촌의 깨끗한 정도는 오는 손님들의 고하를 물론하고 《신발에 묻은 흙을 털었습니까?》고 묻는 정도라니 짐작이 간다.

그래서 8월,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연변조선족의 풍정을 보여주는 영화(해란강반의 벼꽃향기)촬영가동식과 촬영현장으로 수구촌을 택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업적으로 농촌마을과 향진을 많이 돌아본 필자로서 이렇게 깨끗하고 《있을것이 다 있는》 살맛나는 고장은 처음 보았다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이름값을 해낸 돼지띠촌장

《우리 촌의 릉곡지변(陵谷之变)은 우리 촌주임의 덕분입니다.》

이는 지난 12일 점심에 김광수촌주임이 좋아하는 물고기를 잡아놓고 술판을 벌린 마을 청장년들이 하는 말이다.

한국에 가서 5년간 돈을 벌고 돌아 왔다는 허광휘농민은 《나는 우리 촌주임이 너무나 잘하다보니 어떻게 잘했다고 설명을 할수 없어서 더 가깝게 부르느라고 우리가 아닌 내 촌주임이라고 부릅니다》며 김광수촌주임한테 술잔을 따로 부어 올렸다.

마침 자리를 같이한 월청진정부의 몇몇 간부들도 《이런 말은 농민들이 김광수촌주임을 자랑을 하기 위해서 하는말이 아닌 촌민들의 마음속 말이다》며 부언하였다.

《우리촌을 위해 수고하신 김광수촌주임한테 술 한잔 부어 올립니다》

김광수(金光秀)는 1959년생 돼지띠생이다.

한림이 편집한 《옛조상의 삶풀이》는 《돼지띠생은 정직하고 솔직하고 단순하며 아주 강인하다. 돼지띠생은 튼튼하고 용감하여 주어진 임무에 온갖 힘을 기울여 몰두하며 틀림없이 그 일을 끝까지 해낸다. 돼지띠생의 최고의 재산은 신뢰성과 성실성이다. 타인의 짐을 거리낌없이 떠맡고 온갖 정성으로 사람들을 돕고 그에게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다》 고 하였다.

실로 김광수촌주임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 빛날 광(光)에 빼여날 (秀)로 남보다 빼여난 빛을 발산하는 사람으로 주어진 임무에 온갖 힘을 기울여 기적을 창조한 유공자다.

1977년에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 1980년에 입당한 그는 집체때 월청진농기계수리공장 구입원, 부기원, 당지부서기로 지내다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촌주임직을 떠맡고 옛조상들의 띠풀이 그대로 《인생에서 열심히 일하는 쪽을 택하고 자신의 풍부한 정력을 끝까지 발휘하면서 공정하게 사업하는》농민사업가며 개척자다.

그가 몇년간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쟁취한 나라의《3농》부축자금만 해도 350여만원에 달한다.

수구촌에는 86세대에 300여명 인구, 150여 헥타르의 토지가 있다.

김광수가 촌주임을 맡자 수구촌에서는 1998년부터 지난날 량식농사만 하던 전통적인 재배구조를 대담히 바꿔 고추, 참외, 수박, 무우종자, 호박종자 등 경제작물재배로 농민들의 수익을 해마다 높혔다. 그에 따라 김광수는 새 농촌건설사업에 살손을 대였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수구촌

김광수는 남이 못한다는 일을 곧 잘해내는 개척자로 이 촌은 《성급위생촌》, 《성급생태촌》, 《주급문명촌》, 《주급법제시범촌》, 《시급기준촌》으로, 당지부는 《길림성선진창조우수촌선진기층당조직》으로 거의 모든 영예를 《독식(獨食)》하고 있다.

《지금 많은 농민들이 토지와 고향을 떠나는 현실에서 수구촌의 전망을 어떻게 봅니까?》

《저는 아주 밝다고 봅니다. 우리가 촌을 잘 건설해 놓으면 떠났던 사람들이 꼭 다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계승자를 5명 선택하고 목적있게 양성하고있습니다. 그중 4명이 지금 한국에 가서 견식을 넓히고있는데 명년이면 돌아오게 됩니다. 벌써부터 외지로 떠난 촌민들이 귀향하겠다는 소식을 보내고있습니다.》

기자의 물음에 신심있는 확답을 주는 김광수의 장담이다.

김광수는 누구든 귀향하여 제2창업을 하련다면 무조건 물심량면으로 대폭 지지하겠다고 표하였다.

그가 해낸 앞선 일들

수구촌에는 170명의 로력이 있는데 135명이 출국했거나 외지로 나가다 보니 실제 남아 있는 로력은 25명, 그나마 로약자, 병자, 지체장애인들이다.

이런 실정에서 촌에서는 2000년에 전주적으로 처음 150여헥타르의 밭을 16세대 외지호에 도급주었다.

촌에서는 외지호에 밭을 도급줄때 해마다 힘이 붙는 나라의 《3농》우대정책과 그에 따르는 수혜성에 착안점을 두고 도급년한은 3년으로, 도급내용은 앞뒤를 재가며 융통성이 있게 하였다.

2007년부터 나라의 3농 부축대상과 액수가 늘자 2009년에 촌민대표대회를 열고 외지호에 도급을 준 토지를 100%로 회수, 주내에서 처음 주식제를 도입한 부강농민전업합작사와 벼꽃향기농민전업합작사를 조직, 2010년에 두개 합작사를 합병시켜 편민농장(便民農場)을 설립, 70여 세대가 편민농장에 입사(토지면적 137헥타르)했다.

촌에서는 입사한 농호들의 토지값을 원래 매 헥타르당 1300원씩 보상해 주던것을 1800원으로 올렸고 지난날 국가보조금(매무 130원)을 경작호에 주던것을 밭임자에게 돌려주어 환영을 받았다.

촌에서는 년말 총리윤의 30%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고 70%를 촌에 남겨 확대재생산에 돌렸다. 편민농장을 꾸린 첫해인 지난해 이 촌의 집체수입이 15만원, 거기에서 13만 5000원을 농업기계화 설비투자에 돌렸다.

지난해 전촌의 농업수입은 260만원, 인구당 평균수입이 2005년의 6500원으로부터 8200원으로 늘어났다.

살맛나는 촌민들의 문화주택

오붓한 마을의 휴식공간

집체경제도 살렸다.

이 촌에서는 지난 80년대 호도거리책임제를 시달하면서도 집, 인공림 등 집체부동산을 나누지 않고 촌집체재산으로 남겼다.

지금 이 촌의 부동산이 값을 치면 집두채에 30만원, 인공림(80헥타르)이 100만원에 달하는데 이 집체재산도 촌민주식제를 시달했다..

올해에 이 촌에서는 30여만원의 자금을 투자(이미 12만원투자)해 유기벼가공공장설비를 새로 올리고 있다. 촌에서는 매년 수전농사수입만도 50만원 이상을 내다 본다.

마을이 부유해지자 로인들게도 실리를 주었다.

지금 수구촌에는 65세 이상의 로인들이 38명 있는데 이들이 촌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다.

촌지도부에서는 로인협회에 훌륭한 활동장소를 마련해 드리고 지난해부터 로인들을 육체적로동에서 해탈시키고저 로인협회에서 다루던 2,5헥타르의 밭을 촌에서 회수, 대신 해마다 활동경비로 8000원을 투자, 로인협회에 마을의 주관도로에 꽃을 심고 가꾸는 일만을 맡겼다.

수구촌은 도문시양로보험시점촌으로 김촌장의 분투목표는 촌민들이 만년에 도시의 퇴직종업원이 못지 않게 한달에 600 - 700원의 양로금을 보장받는 《월급쟁이》로 만드는 것이란다.

외지호를 통일관리 하였다.

지난 한때 수구촌에 16호나 되는 외지호들로 마을위생이 어지럽고 이웃간에 말썽이 자자하고 서로간의 고발안건으로 간부들의 머리가 아팠다.

이에 2009년, 촌에서는 촌민대회를 열고 지난날 외지호에 도급을 준 토지를 100%로 회수하여 새로 건립한 생산합작사에서 집단적으로 경영, 로동력 수요로 외지호를 단 3호만 남겼다.

촌지도부에서는 수전육모를 무료로 해주는 등 외지호들의 모든 대우를 원 주민들과 똑 같게 하고 《오직 당신들이 잘하면 끝까지 지지한다》는 원칙으로 외지호들의 생산, 생활, 자아관리, 자각참여의 능력과 적극성을 책임적으로 키워주고있다.

마을밖에 가로등을 가설하려고 손님들과 함께 현지 답사

수구촌은 현재 《10성급(星級)문명호》평비활동으로 촌민들의 일사일언을 바로잡고 정기적인 문예활동과 체육활동으로 화애, 문명, 례절, 단결의 분위기로 가득한 살맛나는 촌으로 탈바꿈했을뿐만아니라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촌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사진 글 오기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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