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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묻은 못다한 이야기 그리고 꽃바구니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8-05-14 09:45:09 ] 클릭: [ ]

《그의 20대곤혹 누구의 몫인가》―속편2

그리우면서 원망스럽던 엄마와의 어색한 상봉

죽었다던 엄마가 살아돌아왔으나 정작 엄마를 마주하는 순간, 장수는 반갑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여 어색하기만 하였다. 불쑥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떨려났던것이다.

엄마에게 집으로 가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모가 옆구리를 쿡 찔러놓으며 다른 곳으로 피해 끌고가더니 눈물을 좔좔 흘리며 장수를 설득시켰다. 그바람에 어쩔수 없이 엄마와 한집에서 살게 되였으나 모자간에 별로 대화가 없었다. 

《엄마는 말없이 많이 애쓰셨어요. 저는 한편 안스럽기도 하였지요. 하지만 웬지 아버지의 제사날자도 엄마에게 알려드리기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불쑥 얼떨결에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과연 피는 못 속이는 법인가본다. 모자간에 너무 오랜 세월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오면서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또 뼈아프도록 원망도, 저주도 하였고 현재는 남못지 않게 서먹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서로가 시간을 가지고 한집에서 함께 살며 노력해오는동안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장수의 어머니는 또 오매불망 그리던 집에 당도하였으나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사망소식에 눈앞이 아찔해났다. 그렇지만 자신에겐 아들앞에서 울어번지며 통탄할 자격조차도 없었던것이다. 밥솥에 밥을 안치면서도, 장판을 닦으면서도 눈물만 소리없이 뚝뚝 떨어져들어갈뿐이였다.

《함께 있을 땐 몰라도 멀리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면서야 내 남편,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였습니다. 쏘련땅에 가서 장사를 하려면 경제파트너가 있어야만 장사를 하는줄로 이 곳 사람들은 많이들 알고있던데요. 진정 가정을 생각하고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절대 그게 아닙니다.》

그녀는 모스크바지역의 7개 지역을 전전긍긍하며 장사를 벌여오면서 하루 빨리 돈을 벌어 집 한채라도 마련하고 세집살이에서 벗어나자는 욕망 하나로 이악스레 버텨왔던것이다.

《우리 장수아버지처럼 잘 생기고 유식하고 착한 분 세상에 드물어요. 마음으로 남편과 아이만 그리며 살아오면서 별로 외롭지도 않았고 〈파트너〉같은건 념두에도 없었어요. 그동안 여기저기 끼살이도 하며 둘러보니 〈파트너〉랍시고 다른 남자들과 함께 사는 녀자들 거개는 남자들시중에 많이 뜯기며 살고있어요. 그런 남자들은 또 힘을 합쳐 장사에 열중하는것이 아니라 도박이나 투전놀이에 허송세월하는 이가 많아요.》

그녀는 올곧게 장사에만 골몰하며 애써온 자신도 뜻대로 되지 않아 겨우 목숨이나마 부지하고 돌아올수 있었는데 《집에 돌아왔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로씨야땅에는 지금도 집으로 돌아올래야 올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인지 모른다고 한다.

가족 함께 하는것보다 더 큰 행복 따로 없다

그녀는 지금 아들 장수가 옷이라도 벗어놓을세라 받아 씻어주고 실팍하게 몸이 날가 영양도 고려하면서 다이어트도 될수 있는 음식조절에 온갖 정성을 쏟고있다.  매장일도 다른 판매원을 쓰면  월급이 나간다고 그녀가 매일 《엄마판매원》으로 매장 하나를 돌봐주고있었다.

《우리 장수처럼 열심히 일하면야 당지에선들 왜 돈을 못벌겠습니까. 늘 컴퓨터에 마주앉아 쇼핑구매를 할 때면 하루에 두세시간씩밖에 안 잡니다. 문틈사이로 지켜보면서 가책을  받군 하지요. 아들처럼 저토록 열심히 일하며 벌었더라면 집을 떠나 아들에게 설음만 안겨주고 남편 잃는 슬픔도 없지 않았을가  가슴을 치게 됩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의 방을 치워주면서 글자 한자 적힌 종이쪼박이라도 버릴세라 간수하며  섬기고있었다. 장수 또한 엄마앞에서 언젠가부터 저도 몰래 응석을 부리기 시작한것이다. 장밤을 패고 피곤하게 잠든 아들을 지켜보다말고 출근시간에 맞춰 조심스레 흔들어 깨우면 아들은 잠기어린 목소리로 투정이다.

《응― 싫어, 난 더 자고싶단말이야.》

여라문살되던 그때의 그 응석기로 엄마에게  시름없이 늘어놓는 잠꼬대같은 소리에 엄마는 금시 눈굽에 물기가 어린다.

기특한 아들은 엄마가 외국에 나가 목숨걸고 이룩하려 애쓰던 꿈을 집에서 자기 두 손으로 이룩해놓았던것이다. 아들은 번듯한 살림집을 몇채나 사놓고 사는 집 한가운데는 아버지유상을 크게 걸어두고 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것 같았다. 그러던 요지음 불쑥 엄마한테 먼저 말을 건네왔다.

《어머니, 지금 아버지까지 함께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엄마는 억이 막힐뿐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한창 자라는 자식을 남겨두고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나려는 부모들에게 점심밥을 사들고 다니며 말리고싶은 심정이란다. 자신도 연길시장거리에서 되거리장사를 할 때 아무리 못 벌어도 하루에  70, 80원 정도는  실히 벌었는데 외국에서처럼 목숨을 내걸고 밤낮으로 두세배로 열심히 뛴다면 애들 공부뒤바라지 정도는 못할 일이 아니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자식 잘 둔 부모 복 받는다ㅡ《어머니날》의 꽃바구니

장수의 할머니는 손주가 그토록 새집에서 같이 살자고 간청을 해도 아들이 살던 그집에 계속 머물러살고계셨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사는 할머니는 어느날인들 아들생각에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단다.

《제 아비를 건사하는걸 보면 정말 우리 장수만한 애도 없어요. 한국에 물건구입 갔다가도 청명이나 추석, 제사날엔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아비 제사날은 추운 겨울인데 한손에 아비를 껴안고 한손에 술병을 들고 울며 다닐걸 생각하면 아까와서 혼자 못보내겠더라구요. 손주놈은 기어코 오지 말라고 발을 구르고 난 안 간다 하고는 또 따라나섰지요.》

아버지가 세상뜬지 만 3년세월, 장수는 한번도 아버지산에 다녀오는것을 잊은적 없다. 지금은 또 3년치 골회함 보관비를 내놓고 그동안 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께 명당자리 묘지를 사서 모시겠다고 윽벼르고있단다. 《제 애비 아들을 잘 키웠길래 죽었어두 값이 있소.. 지금 세월에야 죽으면 필이잖수. 우리 아들은 그래도 아들덕에 죽어두 뒤가 있는게요.》

82세나는 장수의 할머니는 가슴에서 연기를 뽑으며 눈물을 짤짤 짜셨다.아들생각이 날 때면 장수라도 한번 봐야 안정이 된다고 한다.

이틀전 장수가 할머니를 찾아뵙고왔건만 웬지 앞이 허전한 할머니는  또 손주놈 보러 친히 매장으로 오셨던것이다.

《난 연길시내에서 비싸고 좋은 과일은 맨 먼저 먹는다니. 장수놈이 어떻게 사들이는지 미처 먹지를 못해. 옷이며 돈이며 쉴새없이 안겨주구. 한국가서도 좋구 비싸다는 보약은 다 사온단데. 손주덕에 이렇게 오래 살고있어유. 명이 기니 능금을 봤수다.》  할머니는 눈물짓던 분 같지 않게 환하게 웃으셨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장수의 어머니도  오랜만에 함박꽃웃음을 활짝 피우며 동을 달았다. 《우리 장수 오늘 〈어머니날〉이라고 제 손으로 꽃바구니선물을 만들어 이렇게 내 앞에 갖다놓았습니다. 말도 없이. 정말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겁니까?.》

여라문살 어린 나이때부터 꽃꽂이를 배우느라 피투성이 되였던 그 손으로 장수는 《어머니의 날》을 기념하여 직접 생화바구니를 꽂아 어머니에게 선물하였던것이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장수의 어머니 김복동씨, 아들의 선물에 가슴 뭉클한 감격을 느끼며 근 10년세월동안 아들의 유일한 어선으로, 바람막이로 허위허위 지탱해온 시어머니의 가냘픈 어깨를 살풋이 감싸안아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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