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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촌관》- 간구자촌 김정익당서기

편집/기자: [ 최창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8-01-03 11:13:34 ] 클릭: [ ]

락후 촌을 살기좋은 농촌으로 탈바꿈

장백현 십사도구진 간구자촌 김정익당지부서기.

촌의 북오미자가공기지를 돌아보고있는 김서기(왼쪽사람).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사도구진 간구자촌 당지부서기이며 촌장인 김정익은 일편단심 촌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촌민들을 이끌고 사회주의 새농촌건설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했다.

1978년에 십사도구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마을로 돌아와 30년간 부지런한 실농군으로 살아온 그는 선후로 촌에서 생산대 조장, 부대장, 촌장직을 맡아하다가 1999년도에 촌당지부서기로 제발, 2002년부터는 촌장직까지 겸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그는 촌의 락후한 면모를 개변하고 새농촌을 건설하기 위해 촌민들을 치부에로 이끌었다.

촌민들의 일에 발벗고 나서

간구자촌은 384세대 농가에 1244명 인구를 갖고있는 시급 새농촌건설 시점촌으로서 경작지면적은 238헥타르에 달한다. 그중 조선족이 50세대, 140명으로 각기 전 촌 농호와 인구의 13%와 11.3%를 점하고있다.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마을에서 김정익서기는 우선 민족단결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고 촌민들이 곤난이 있어 그를 찾기만 하면 한족이든 조선족이든 민족을 불문하고 적극 발벗고 도와나섰다.

2004년 여름, 간구자촌은 련속 내린 큰비에 마을의 도랑물이 갑작스레 불면서 부분 농민들의 경작지를 위협했다. 그는 촌민들을 거느리고 며칠간 큰물방지에 달라붙었으며 밤낮으로 언제를 지켜 손실을 면했다.

촌의 기초시설 혁신

촌 남쪽에는 나무다리 3개가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되여 물이 나거나 차가 지날 때면 위험했다. 촌지부서기로 제발된 후 그는 돈을 모아 먼저 다리부터 수건하기로 작심,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현 관계부문들에 찾아다니면서 지원을 요구했으며 촌민들을 이끌고 다리건설에 달라붙었다.

낮에는 다리건설 현장에서, 저녁에는 촌민들의 집집을 찾아다니며 봄갈이 생산준비 상황을 알아보고 함께 론의하느라 하루종일 눈코뜰새없이 보냈다. 근 3개월간의 악전고투로 원래의 나무다리가 전부 세멘트다리로 훌륭하게 건설되여 이곳 촌민들의 생산과 생활에 편리를 가져다주고있다.

교육사업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김서기는 현교육국, 현국토자원국 등 관련부처의 대폭적인 지지하에 여러 모로 50여만원의 자금을 모아 촌소학교에 건평이 800평방메터에 달하는 2층 교수청사를 새롭게 지어주고 겨울난방문제까지 해결해주어 농촌학생들이 도시 부럽지 않게 우월한 교수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2005년에는 성재정청의 부축자금을 쟁취해 100평방메터에 달하는 촌위생소를 다시 짓고 길이가 1400메터에 달하는 강뚝을 쌓았으며 촌집체경제 수입으로 촌사무실, 문화활동실을 훌륭하게 보수했다.

근년래 김서기의 인솔하에 촌에서는 선후로 100여만원의 자금을 지불해 농민들의 집집에 유선텔레비죤을 가설하고 음료수문제를 해결했으며 촌의 주간도로와 골목길을 전부 세멘트포장도로로 건설했다.

또 지난해에는 30만원의 자금으로 길이가 600메터에 달하는 강뚝을 더 쌓고 3800메터 길이의 배수로를 가셔냈으며 3만원을 들여 촌의 주요거리와 골목길에 가로등을 더 가설하고 2만원을 투입해 촌의 주요출입구에 감시설비를 가설함으로써 안정된 사회치안질서를 유지하고 평안촌건설에 담보가 있게 했다.

촌민들을 치부에로 이끌어

이같이 김정익서기는 촌의 기초시설 건설을 다그침과 동시에 농업생산을 주도산업으로 틀어쥐고 치부항목을 부단히 늘려 촌의 락후한 면모를 몰라보게 일신시켰다.

근년래 그는 시장조사를 거쳐 농업산업화구조를 합리하게 조절, 전에는 촌에서 농민들이 재래식농사로 콩, 벼, 옥수수만 심던데로부터 경제작물을 많이 심도록 적극 고무하고 선진적인 농업과학기술을 촌민들에게 보급시켰다. 한데서 인구당수입이 원래의 900원에서 지금은 로무송출수입외에도 인구당 3000여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봄, 촌지도부 기바꿈선거에서 김정익지부서기는 재차 만장일치로 촌당지부서기 겸 촌장으로 선거되였다.

그는 새로 선거된 지부위원회와 촌민위원회 성원들을 이끌고 제반사업을 더욱 실속있게 벌여나갔다. 선후로 200만원의 자금을 인입해 북오미자기지 200여무, 여러가지 중약재기지 23무를 일떠세웠으며 외자 30만원을 인입해 촌에 두개의 목재건축가공공장을 세우고 재배업, 사양업과 운수업을 대폭 발전시킨데서 촌집체경제 순수입이 년간 20여만원을 웃돌고있다.

이로부터 많은 농촌 여유로력이 제2, 제3산업에 종사하고있으며 로무송출로 이미 100여명이 한국, 일본과 천진, 상해 등 나라와 지역에 돈벌이를 나갔는데 현저한 경제효익을 창출하고있다.

촌의 정신문명건설

촌집체경제가 장대해지고 촌민들의 생활조건이 크게 제고되자 김정익서기는 촌의 정신문명건설을 바싹 틀어쥐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농민들의 문화자질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촌구락부를 수건했고 촌공청단지부와 민병련, 당지부로 하여금 군중을 조직동원하여 풍부하고 다채로운 문화오락활동을 활발히 벌이게 함으로써 단조롭던 농촌문화생활을 활기띠게 했다.

농한기와 중대한 명절때를 리용해 100여명의 양걸대를 이끌고 현소재지와 진정부 그리고 여러 농촌마을에 내려가 동북대양걸춤을 멋지게 출연함으로써 간구자촌농민들의 량호한 정신풍모를 충분히 구현하고 현의 정신문명건설에 기여해 원근에 이름을 날리였다.

이렇듯 한마음으로 촌민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촌서기를 두고 사람들은 《우리 마을의 훌륭한 지부서기》라고 칭한다.

근년래 김서기의 인솔하에 간구자촌은 선후로 《길림성 〈5호〉 촌당지부기준병》, 《길림성 〈세가지대표〉 학습선진당지부》, 《백산시 초요촌건설 기준병촌》으로 평의되고 그 자신도 장백현 《훌륭한촌관》, 《홍수방지모범개인》, 《우수당원》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으며 련속 10년간이나 현당원대표로 선거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백산시 당위와 정부로부터 한차례의 《사이비종교 방지와 처리 개인 3등공》을  기입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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