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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후의 곤혹

편집/기자: [ 고설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06-12-26 14:09:05 ] 클릭: [ ]

새세기 조선족사회 새 현상(61)

《딸라뭉치는 들고왔지만 행복은 사지 못하네요》

《돈을 벌었으니 이젠 깨알이 쏟아지게 살아봅시다》고 하며 해외, 연해도시 진출로 돈을 벌고 금의환향한 사람들이 현지 가족친지들과 생활관념 등 여러 가지 차이로 새로운 마찰을 빚고있어 화제다. 조선족들은 한국만 갔다오면 돈을 많이 벌었든 적게 벌었든 모두 고향을 떠나 무작정 도시길을 택하는것이 공식처럼 되여있다.  하여 시내 조선족학교주위에 이렇게 올라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있다.

문제는 도시로 진출한 조선족들은 《열이면 열이 하나같이 놀고있다》는것이다. 몇년동안 피땀으로 벌어온 돈을 날리고나면 또 한국길을 택하는,  개미 채마퀴돌듯 악성순환을 하고있다. 일정한 자금을 손에 쥐고있지만 고향에 돌아와 창업이나 장사의 생각이 없이 매일 흥청망청 먹고 논다.

올봄 기자가 길림시선영구 경풍시장에서 교하에서 올라온 조선족김치장사군 김씨를 만났는데 그는 몇년동안 열심히 김치장사를 하여 아빠트도 한채 장만하였고 자식 둘을 공부시키고있지만 생활형편은 넉넉하며 손에 저금통장까지 쥐고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돈벌이는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며 돈을 벌줄도 알아야 하지만 관리할줄 아는것이 더 바람직한 행실이다》고 하면서 김치장사도 자기만 부지런하면 한국행못지 않다고 했다.

해외, 연해도시 진출로 금의환향한 사람들이 진정 친지, 친구들과 정을 돈독히 하며 아기자기한 가정생활을 하고있는가?

길림시 음식점에서 일하는 김씨녀성은 남편이 한국간 후 어린자식을 데리고 식당일로 아들애를 공부시키며 손꼽아 남편을 기다려왔다.

헌데 7년만에 귀국한 남편이 웬 녀자를 데리고 와서 리혼을 제기하였다. 너무 기가 막힌 안해는 남편의 마음을 돌려세워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허나 남편은 견결히 리혼을 요구하였다. 몇년동안 돈 한푼 안 보낸 남편을 두고 안해는 중학교 다니는 아들애를 대학까지 공부시키자면 돈이 필요하니 아들애의 학습과 생활비용으로 얼마간의 돈을 요구하였다.

남편은 도리여 안해를 법에 기소하겠다고 펄펄 뛰였다. 서란시 박모는 안해와 한국에 가서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몇년간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올 여름, 박씨라는 남편은 집에 일이 있어 먼저 귀국하였는데 한국에 있던 안해가 리혼전화를 걸어왔다.

아무리 설복해도 안해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으니 남편은 자기가 그동안 안해에게 바친 돈이라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십여년을 함께 살아온 안해가 《언제 돈을 나에게 맡긴적이 있어요》하며 시치미를 따는 소리에 박모는 속이 다 뒤집혀질 지경이라며 억이 막혀했다.

길림시 룡담구에 살고있는 서모는 오십넘어 한국에 가 몇년간 돈벌이를 하고 귀국, 《물이 난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이고 주방일에 손때가 꼬질꼬질 묻은 풍덩한 몽당바지를 입고 얼굴에 주름살이 밭고랑처럼 간, 손자를 키우는 로친》이 촌티가 난다고 미용원도 다니고 옷도 사입으라고 타일러도 안해가 듣지 않았다.

령감이 벌어보낸 돈을 일전 한푼 헛되이 쓰지 않고 착착 챙겨두었다.

몇년간 한국물에 젖은 서모는 머리를 염색하고 집을 나설 때면 항상 정장 차림을 하고 다니며 로친과 동행하는것을 아주 꺼리였다.

이 나이에 리혼하자니 체면도 꼴불견이고 돈을 관리하는 안해가 《칼자루를 내가 쥐고있으니 리혼하자면 합시다》하고 땅땅 나오니...결국 또 한국행을 택했다고 한다.

특대교통사고 피해자인 김모는 10여년전에 안해와 리혼, 아들애를 데리고있는데 오십넘은 매형과 누님이 한국에서 벌어보낸 돈을 몇만원 쓰면서 그럭저럭 보냈다.그러다가 입원하여 매형이 보내준 2만여원 치료비로 치료를 하다가 두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말에 김씨는 절망한 나머지 다리를 싸맸던 붕대를 풀어 침대에 목을 매여  삶을 포기하였다.  농촌정황도 대개 같다.

서란시의 금성촌유기농법 논김매기현장에서 일당 25원씩 받고 일하는 일군들이 많을 때는 사오십명이나 되는데 조선족은 한사람도 찾아볼수 없는 모두 타민족들이다.

조선족들은 품팔이는커녕 가정에서 일방이 출국하면 집에 있는 사람은 응당 놀아야 하는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방광암으로 진단받은 서란시 철동구 영춘촌 신툰에 살고있는 최광수농민같은 분이 있어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안해가 한국간지 일년이 지났지만 안해가 벌어보내는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챙겨두고 혼자 신새벽에 일어나 투박한 솜씨로 녀자들이 해야 할 순대와 떡장사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아들애의 뒤바라지를 하여 미담으로 전해지고있다.

최광수와 같이 한국간 안해의 뒤손이 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적은것이 조선족사회의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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